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세 번째

직장에 다니면서 출근 전 새벽이나 퇴근 후 늦은 밤 시간을 쪼개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들이 운동을 하기도 하고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하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대단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정녕 위대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으로.

늘그막에 새로 시작한 일이어서 그런지 참 몸에 익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지만, 뭐 어쩌랴. 내가 선택한 길인 것을. 그런 와중에 보리스 매거진은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그래도 업데이트는 계속 하고 있으니 나도 위대한 건가? ㅋㅋㅋ 아무튼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형식으로 취향 코너를 꾸몄다. 이전의 두 번 짤막 소감은 아래 링크에서.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첫 번째

지난 얼마간 즐겼던 콘텐츠들에 대한 짤막 소감 두 번째


<방과 후 전쟁활동> 성용일 감독 / 신현수, 임세미 등

교복과 군용 소총, 이 그로테스크한 조합

공개 직전 나름 기대를 하고 있던 드라마인데, 뒤늦게 보게 되었다. 티빙 오리지널인데 정작 티빙에 가입은 해놓고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는데… 까놓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하긴 힘들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고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쳐들어와 인간들을 말 그대로 도륙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대한민국 정부에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소총수로 써먹는다는 이야기.

전체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 부분은 설정이나 세계관에 관한 것은 아니라는 점부터 명백히 하고자 한다. 상식적으로 성별 불문하고 강제 징집을 해야 할 상황이면 군필 아저씨들을 먼저 동원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방과 후 전쟁활동>은 어디까지나 ‘입시 전쟁’을 겪고 있는 고딩들을 ‘일부러’ 주인공으로 삼아 작가가 시청자는 물론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일종의 우화에 가깝지 않은가.

문제를 삼을 만한 부분은 그런 부분이 아니라 다수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연출, 허겁지겁 서두른 티가 명백한 엔딩 같은 것들이다. 그래선지 조금 찾아보니 공개 전에는 나처럼 나름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제법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했다는 반응이 많은 듯.

다만 어디까지나 ‘전체적으로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봤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엉성한데 전체를 보면 그렇게까지 후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뭘까 곱씹어보니, 결국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이기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고3 아이들이, 살상무기를 들고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장에 투입되는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던(본작은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바로 그 상상력. 어쩌면 이런 부분이 요즘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른바 ‘K-콘텐츠’의 생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고.

한 가지만 덧붙이면,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군용 소총을 들고 있는(심지어 여학생들은 길에서 흔히 보이는, 짧은 교복 치마 아래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패션을 하고 있다), 은근히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이 꽤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원작자인 하일권 작가도 바로 그런 점을 처음부터 노렸을 수도.

<공작(El Conde)> 파블로 라라인 감독

아마도 난생 처음 보는 칠레 영화, <공작>

칠레 영화로는 아마도 처음 보지 않나 싶은 작품. 이런(?) 영화가 넷플릭스에 있다는 것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흥미가 돋아서 봤다. 그리고, 보길 정말 잘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영화인데, 넷플릭스 계정 있는 분들은 꼭 보시라.

국민을 학살하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 독재자를 두고서, 백성의 고혈을 빠는 흡혈귀라고 칭하는 표현은 사실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 독재자가 바로 진짜 흡혈귀(?!)라는 이야기라니!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인 바로 그 독재자는, 지금은 사망했지만 어쨌든 엄연한 실존 인물인 박…이 아니라(하필이면 글을 작성하는 날짜가 10월26일이네? ㅋㅋㅋ) 대한민국의 대척점에 위치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게다가 영화 속에서 그의 친모로 나오는 인물은, 세상에나…!

흡혈귀가 주인공으로 나오긴 하지만 호러보다는 블랙코미디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보는 흑백영화이기도 한데, 바로 그래서 더욱 인상적인(예컨대 흡혈귀를 죽이고자 투입된 수녀가 하늘을 훨훨 나는 장면) 그림도 그려졌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나 전두환이 사실은 흡혈귀라거나, 김영삼이 알고 보니 좀비 헌터라는 내용의 영화가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이건 영 불가능하겠구나 싶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문화적 포용력은 칠레보다도 못하구나.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브라이언 더필드 감독 / 케이틀린 디버

고전 호러/SF <바디 스내처>를 연상시켰던 작품

한국에서 디즈니플러스 플랫폼에 접속하면 ‘스타(STAR)’라는 별도의 채널을 볼 수 있다. 이는 해외에선 훌루(Hulu)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는 채널인데 여기에 종종 아주 의외의 영화가 올라온다. 예컨대 ‘온 가족의 디즈니’란 이름이 무색한, 말하자면 19금 호러 영화들이 그것. 지난 번 보리스 매거진에서도 소개했던 <바바리안>도 바로 스타 채널에서 본 영화인데 오늘 소개하는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원제 No one will save You)>도 여기서 봤다.

매우매우 저예산에 속하는 호러/SF. 어느 정도인고 하니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여배우 혼자만 나오고(케이틀린 디버, 꽤 매력적인 배우다)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해한다는 내용. 그런데 이 외계 생명체들이 인간을 숙주로 삼고 주인공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니, 호러/SF 하이브리드 장르에서 꽤 유서 깊은 작품인 <바디 스내처>가 떠오른다.

어차피 장르도 비슷해서 <놉>도 연상되는데, 하여튼 참 오랜만에 보는 저예산 호러. 감독이 궁금해서 더 찾아보니 <사탄의 베이비시터>하고 <언더워터>를 연출했던 그 감독이구나. 브라이언 더필드라는 이름, 기억해둬야겠다.

<발레리나> 이충현 감독 / 전종서

어쨌든 독보적인 매력을 소유한 전종서

아주 독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전종서 주연의 유혈낭자 액션. 연출은 주연배우와 <더 콜>에서 함께 했고 그 이상으로 끈끈한 사이(실제로 둘이 사귄다)인 이충현 감독. 킬링타임을 위한 양산형 넷플릭스 액션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겉멋’으로 가득한데, 뭐 그게 꼭 나쁘다는 얘긴 아니다. 전혀 의외의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게 괜히 웃기다. ㅋㅋㅋ

<코카인 베어> 엘리자베스 뱅크스 감독 / 레이 리오타

약 빤 곰(?), 약 빤 영화 <코카인 베어>

의외로(?)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된 작품. 근데 감독 이름을 보니 더 의외. 엘리자베스 뱅크스면 예전에 <스파이더맨>에도 나왔던 그 배우? 그 배우 맞다. 아니 근데 이렇게 ‘약을 쎄게 빤’ 영화를 연출하다니! ㅋㅋㅋ

경비행기로 마약을 운반하던 중 사고가 나서 삼림이 울창한(그리고 당연히 엄청 넓은) 국립공원 어딘가에 수백억 상당의 마약이 떨어지는데, 어떤 곰이 그 마약을 먹고 눈이 뒤집혀서(…) 사람들을 끔살한다는 황당한 내용인데, 이게 실화라는 게 더 어이없다. 사지절단은 예사로 나오니 보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긴 개뿔. 그냥 황당하게 웃기는 영화니 주말 저녁에 맥주 한 잔 하면서 가볍게 보기 딱 좋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배우 레이 리오타의 유작이기도 하다.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 니콜라스 케이지, 니콜라스 홀트, 아콰피나

웃기는 드라큘라 이야기 <렌필드>

고전 중의 고전 <드라큘라>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해서 나름 기대를 했는데 막상 보니 그 정도는 아니고, 일단 제목부터가 드라큘라의 집사(이자 시종)인 ‘로버트 몬태규 렌필드’인 것부터, 호러보다는 코미디 쪽에 가깝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작품에서 렌필드(니콜라스 홀트)는 원래 부동산 업자였는데, 드라큘라(니콜라스 케이지)에게 꼬여서(?) 그와 함께 영생을 사는 흡혈귀가 된 이후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관람 등급이 등급인 만큼, 유혈낭자 사지절단 피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만 장르가 코미디인 만큼 무섭거나 끔찍하기보다는 그저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아콰피나가 의외로 진지한(?) 역을 맡았는데 나름 잘 어울리는 것도 신기.


지난 약 3~4주간 열심히 즐긴 콘텐츠들은 이와 같다. 그래도 아직 봐야 할 영화와 드라마들이 많다. <크리에이터>도 보고 싶었는데 이미 극장에선 대부분 내렸고, 디즈니플러스 <최악의 악>도 재미있다고 하던데 이것도 봐야 되고, 넷플릭스에선 애니메이션 <플루토>도 봐야 되고…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