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좌충우돌, 하지만 누구보다 절실했던 그들: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Vol. 3]

자칭 ‘우주의 수호자들’, 시작은 다소 미미했다

MCU 타이틀을 달고 나온 마블/디즈니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전 세계의 많은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던 와중, 그 영화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참 희한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어느 정도였는고 하니, 적어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MCU 대부분의 영화들은 미국 다음으로 높은 흥행 수익을 우리나라에서 챙겼다. 이른바 ‘마블민국’ 소리를 듣던 시절.

지금으로선 정말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불과 4~5년 정도밖에 안 되었던 그 때조차,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이하 <가오갤>)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재미를 못 본, ‘몇 안 되는’ MCU 시리즈였다고 할 수 있다. 시리즈 1편의 경우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명량>과 붙었던 대진운 탓을 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우리나라에선 우주 배경의 SF 장르가 유독 흥행에서 힘을 못 썼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가오갤> 시리즈 자체가 호불호를 쎄게 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는 점도 마땅히 언급해야 할 것이다.

말빨만 앞세우는 좀도둑, 자기 정체성에 고민하는 여전사(들), 농담을 모르는 근육질 바보, 생체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너구리, 오직 한 마디만 할 줄 아는 나무 사람(…) 같은 모지리들의 좌충우돌 모험담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고? 특별한 능력도 하나 없는 오합지졸인데?

솔직히 <가오갤> 시리즈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 편

반면 그 특유의 ‘쌈마이함’ 때문에 매력을 느낀(나를 포함한) 팬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MCU의 다른 그 어떤 작품들과 비교해도 캐릭터의 강한 개성이 돋보이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원래 어떤 이야기에서 강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태생적으로 어떤 ‘결여’를 갖고 있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그 주인공이 어떤 이유로 대오각성을 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오갤>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런 사례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모지리’ 캐릭터들이, 전체 이야기와 맞물려 작품 내에서 구현된 방식 또한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피터 퀼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워크맨(시리즈 2편 마지막에 소니의 ‘실패한’ 포터블 뮤직 플레이어 ZUNE으로 바뀌었다)에 연결된, 고색창연한 헤드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올드 팝 넘버는 지구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향수를 상징하는 한편으로, 작품 속 매 장면과 정말이지 찰떡처럼 잘 달라붙기까지 한다!

<가오갤> 시리즈의 이 모든 미덕은 온전히 제임스 건 감독의 취향이자 능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세상 온갖 삐딱함이 체화된 듯한’ 엽기적인 B급 영화 제작사로 유명한 트로마 엔터테인먼트 출신이고 <가오갤> 이전에도 충분히 불량한(?) 면모는 여러 작품에서 엿볼 수 있었다.

※ 제임스 건 감독은 ‘혈기왕성하던 시절(?)’ 트위터에 쏟아낸 여러 막말이 문제가 되어 디즈니에서 한 번 퇴출되기도 했다. 본인 해명에 의하면 그저 (수위가 조금 높은)농담이었다고 하며 해당 트윗을 모두 삭제하고 사과를 한 이후 다시 디즈니의 요청으로 복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실 그가 디즈니에서 퇴출되던 때가 바로 <가오갤 3> 작업을 막 시작하기 전이어서 해당 프로젝트는 <토르: 라그나로크>와 <토르: 러브 앤 썬더>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실제 둘은 매우 친하다고)이 연출을 맡을 것이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는데, 결국 복귀 이후 제임스 건 감독의 손에 의해 온전히 만들어지긴 했다.

이 ‘우주적 오합지졸’에 보내는, 감독(그리고 팬들)의 따스한 성원과 지지

어쨌든 재기발랄한 감독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수지만)열광적인 팬덤을 만들어낸 시리즈는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진작 은퇴를 했지 않았는가? 자, 여기에서 감독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떤 이야기를 통해야만 이 ‘우주적 오합지졸’들의 퇴장(혹은 세대교체)이 섭섭지 않게 여겨질 것으로 생각했을까? <가오갤 3>에서 제임스 건 감독이 정말 영민한 감각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루저들에겐 애정 어린 성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휴머니스트란 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애틋하고, 뭉클하며, 장엄하리라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

<가오갤 3>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피하는 한편, 그래도 나름 중요한 부분을 언급한다면 아무래도 로켓의 기원에 관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사실 로켓은 전작에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인지에 대해 (자세하진 않지만 대략적으로나마)밝힌 적이 있긴 하다.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 비인간적인 과학자들이 자신에게 온갖 실험을 했다고 했는데, 바로 그 부분이 이번 3편에 구체적으로 나온 것. 그 광경은 유쾌할 리가 없다. 오프닝부터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흐르는 것부터 벌써 이번 3편의 주인공은 바로 로켓임을 알려주는 열쇠라고 하겠다.

3편에 처음 소개된 ‘아담 워록’ 캐릭터는 나쁘지 않았다.
<가오갤> 시리즈가 앞으로 더 나오면 그도 또 나올까? 글쎄.

<가오갤 3>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 나아가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오갤 3>이 선택한 방식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진다. ‘정치적 공정함’이란 메시지는, 그저 유색인종 배우나 동성애자, 장애인 같은 캐릭터를 기계적이고 산술적으로 배치하기만 하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친구이자, 가족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데에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제임스 건 감독은 흉측하게 개조된 동물들을 데리고서 해냈다! 진정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그리고 솔직히, 바로 이 부분의 원고를 작성하는데 영화 속 장면이 다시 생각나서 괜히 눈물이 찔끔했다. ㅠㅠ).

시작부터 오합지졸이었고, 내내 티격태격하며 좌충우돌했던 이 ‘우주적 모지리’들은, 시리즈의 대단원에 와서 자신들에게 결여된 부분을 채우고자 한다. 그런 그들의 시도를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캐릭터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세월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이 우주를 절실하게 지켜낸 수호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덧붙이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영화관에서 2회차 이상 관람한 MCU 영화가 한 편도 없었는데 다음주에 한 번 더 보러 가려고 한다. ‘인피니티 사가’ 이후 MCU가 거둔 최고의 성과에 다시 한번 박수를!

정말 뭉클했던 <가오갤 3>,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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