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우 중대한 어떤 사건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 하필이면 하자(?)가 있거나 다소간 한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설정은 꽤 많은 문화 콘텐츠에서 오래 전부터 사랑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선 히치콕 감독의 <이창>이 있고(따지고 보면 <현기증>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해리슨 포드가 한참 젊었을 때 나왔던 <위트니스> 등이 있다. 소설에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걸 온 더 트레인>(개인적으로 영화보단 소설 쪽이 훨씬 나았다) 등이 비교적 최근에 그런 구성을 빌어온 작품이었다. 한국 작품 중에서도 정우성 김향기 주연의 <증인>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고.
이와 같은 구성이 흥미로운 이유는, 당연하지만 그 목격자의 증언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경 목격자는 그 중대한 사건을 저지른 범인의 위협을 받는 상황도 펼쳐진다. 대놓고 심장 쫄깃해지는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기에 딱 좋은 구성인 것이다.
<올빼미>는 여기에서 한 술 더 떠서, 세자의 죽음(독살)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을 목격한 자가 맹인인데, 하필이면 사방이 밝은 대낮에는 앞을 못 보고 어두운 밤에만 볼 수가 있는 ‘주맹증’(실제로 있는 질병이라고 한다)을 앓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가져온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공동 각본) 연출까지 한 안태진 감독의 과감한 아이디어는 조선 600년 역사 속 인물 중 손꼽힐 만큼 드라마틱한 생을 살다 간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 단 한 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인은 학질인데, 마치 약을 잘못 쓴 것처럼 온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모두들 알다시피 소현세자는 왕세자이면서 외국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본국에 돌아온 경우. 왕의 입장에선 왕세자이기 이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피붙이를 멀리 외국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야 오죽할까. 어쨌든 시간이 흐를 만큼 흘러서 다시 돌아오긴 했으니 다행인데, 이번엔 다른 쪽에서 꼬인다(?). ‘외국 물’ 좀 먹고 왔다고, 임금인 아버지를 가르치려 드는 것. 일단 오랜만에 아들의 얼굴을 봐서 잠시 반가웠던 마음은 뒤로 하고, 왕은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왕권에 도전하는 일은, 이 왕국의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선 안 된다. 그 사람이 자신의 아들일지라도!
여기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부분은 인조 역 유해진의 탁월한 연기다. 연기 경력이 매우 오래된 배우에게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그 어느 모로 보나(?) 임금 역할엔 정말 안 어울릴 것만 같았던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갈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낯빛이 확 바뀌면서 자신의 은밀한 지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내의원을 타박하는 장면에선 한 마디로 진짜 ‘끝내줬다’. 매우 히스테릭하고 의심이 많으며 성마른 성격의 소유자였던 인조(여러 가지 사료에 따르면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낮엔 앞을 볼 수가 없지만, 사위가 어두워지는 밤에는 앞을 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한계를 가진 인물 천경수를 연기한 류준열 또한 유해진 못지 않은 연기를 보여줬다. 원래 맹인 연기를 할 때 시선 처리가, 오히려 일반인 연기 때보다 더 어려운 법인데 특히 이런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엔 감독의 디렉팅도 한 몫 했으리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출 부분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진다. <올빼미>의 연출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당연히 주인공 천경수의 시선에서 사건이 이러저러하게 구성되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이를테면 이런 식. 천경수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낮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 따라서 그는 소리로 주변을 파악하고 상황을 인식하는데, 카메라의 포커스가 경우에 맞춰 적절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특히 천경수가 맨 처음 궁으로 들어갔을 때, 내의원의 부산스런 움직임을 배경으로 그의 얼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가 배경에 골고루 포커스가 맞춰지는, 이른바 ‘딥 포커스’를 연상시키는 연출은 최근 한국영화에선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언젠가부터 왕궁이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우리나라 사극에서 매우 공들여 연출한 미장센도 자주 볼 수가 있는데, <올빼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극에서 ‘발’(사람의 발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수렴청정’ 할 때의 그 발을 말한다)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하기에 아주 좋은 소도구로 종종 쓰이는데 역시 <올빼미>에서도 뭔가 은밀한 사건이 진행될 때 천경수, 혹은 인조가 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거나 외부의 제3자(세력)와 대치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천경수가 맹활약(?)을 펼치는 때는 당연히 사방이 어두운 때인데(밤만 되는 그는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활약한다. ㅋㅋㅋ) 모니터의 특성상 그 진한 푸른색이 그저 평범하게 ‘잘 안 보이는’ 모습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스크린 상태가 좋은 영화관에선 이 부분의 느낌이 매우 달랐을 것이다. 상영관에서 못 보고 OTT(디즈니플러스)로 보는 바람에. ㅠㅠ 덧붙이면, 영화관에선 사운드가 흐르는 방향도 매우 세심하게 구현되었을 듯한데 역시 집에서 OTT로 본다면 이런 부분을 온전히 느끼기가 힘들겠지.

다시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스스로 한계를 갖고 있는 인물이 뭔가 커다란 사건을 목격했는데 그런 사실을 주변에 이야기해봤자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아예 이야기조차 할 수가 없는 상황(바로 이 작품이 그러하다)에 놓이는 스릴러로서 <올빼미>는 매우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결말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많은 팩션 장르의 영화들이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엔딩을 내지는 않던데… 뭐, 그 부분은 감독의 선택이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언급하려고 한다. <올빼미>는 작년 하반기에 개봉하여 박스오피스에서 나름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다가 최종 332만 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2023년 1/4 분기까지 개봉한 모든 한국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이 되었다. 요즘 한국영화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런 상황과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탐구는 둘째 치고, 블록버스터나 텐트폴 영화 말고 ‘딱 요만한 사이즈’의 영화에도 영화팬들이 관심을 보이고 기꺼이 티켓 값을 지불하는(그 티켓 값이 얼마든) 날이 오도록 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