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영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로부터 다른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시대의 영화 장인은 수줍게 대답한다. <파벨만스>가 시작하고 나서 채 2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온 다음의 대사에, 그가 생각하는 영화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영화는, 꿈이란다. 잊히지 않는 꿈.”
정말 오랜 기간 동안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스티븐 스필버그는 정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정 몇 작품을 빼면 개인적으로 그가 연출한 작품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그래도 꽤 많이 보긴 했다). 그래서 나에게 그는 감독보다는 제작자로서 더 인상이 깊었는데(실제로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들보단 제작을 맡은 작품들 쪽에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이 많다! 당연하지만, 연출보단 제작을 맡은 작품이 훨씬 많다), <파벨만스>를 보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영화를 직접 만드는 일 쪽에 영혼의 이끌림을 더 크게 느끼는 모양이다.
꼬맹이 시절, 매사 진지하고 심각한 공돌이(…) 아빠와 매사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엄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샘 파벨만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 <지상 최고의 쇼>에 흠뻑 빠지게 된다. 영화 속에서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이 자꾸 기억에 남은 꼬맹이 새미. 아빠가 갖고 있던 카메라로 조물락조물락 하면서 귀여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참 희한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인 <파벨만스>에서 주인공 새미가 만드는 영화들은 모두가 장르영화에 속한다. 스펙터클한 액션이 펼쳐지거나, 온몸에 (휴지)붕대를 감은 괴물이 나오거나,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을 그리거나, 심지어 다큐멘터리까지, 어렸을 때의 새미는 정말 쉬지도 않고 계속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데 그것들은 모두 스필버그 감독이 실제로 만든 영화들이다(그 가운데 ‘전쟁물’인 <Escape to Nowhere>는 지금 유튜브에서 볼 수도 있다!).

샘 파벨만은 가족이 겪는 풍파와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곁엔 영화가 있었다. 아주 잠깐, 영화를 스스로 버리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필이면 그의 아픈 개인사와 영화가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그가 영화를, 어쩌면 영화가 그를 다시 ‘선택’한다.
샘은 언제나 영화에 진심이었다. 어린 여동생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았을 때부터, 아마도 생전 처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라는 걸 하는 터일 샘의 친구에게 연기 디렉션을 줄 때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잠시 몸을 담았던’ 괴짜 할아버지로부터 예술에 관한 개똥철학 강의를 들을 때도, 심지어 자신을 대놓고 괴롭힌 동창생이 엄청 멋지게 그려진 영화를 연출했을 때에도 언제나 그랬다. 샘을 괴롭힌 동창이 “왜 나를 하늘이라도 날 것처럼 그려놓았냐”고 하니, 샘은 말한다. “난 내가 본 대로 찍었을 뿐이야.” 영화란 그렇게, 샘에겐 잊히지 않는 꿈이라고 할 만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영화 말고는 그 어떤 일에도 적응을 하지 못하는 샘은 어찌저찌 TV 쇼 연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당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물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스포일러이긴 한데,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니. 그 문제의 거물이란, 샘이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봤던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와 관련이 깊다(?). ㅋㅋㅋ 그리고 이어지는, 감탄과 탄성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우아하면서도 유쾌한 엔딩. 파벨만의 앞길에, 아니, 스필버그의 앞길에 놓인 미래가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영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P. S: <파벨만스>는 내내 뭉클한 감정을 전달하긴 하는데,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썩 재미있지 않았다. ^^;; 이 거장의 고풍스런 감수성에 젖기에 지금의 난 너무 강퍅하다.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라면 <비 카인드 리와인드>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쪽이 내 취향엔 훨씬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