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현실적인 2023년의 공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2023년 2월 넷플릭스 공개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공포는 어떤 종류의 것일까? 귀신 들린 아이? 악령이 깃든 흉가? 전기톱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는 연쇄살인마? 심해에 살고 있는 거대 괴수? 물론 이런 존재들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된 테마로 다뤄진 바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그리고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공포를 자아낸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을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자 상어를 두려워한 이들이 해수욕장을 찾지 않는 바람에 몇 년간 미국 전역의 해수욕장들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는 건 그저 한 때의 해프닝으로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상어보다 사람을 훨씬 더 많이 죽이는 동물은 모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2023년 대한민국 시민이 가장 마주하기 싫은 상황을 꼽아볼 때, 어딘가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젠 생활의 필수품도 넘어 나와 사실상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주인공 이나미(천우희)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찾는데, 실제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꽤 많을 듯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 출퇴근, 직장에서의 업무, 친구들과 만나서 놀다가 귀가를 해서 씻고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 모습은 어찌나 그렇게 시청자들의, 그리고 내 생활과 똑같은지.

맞닥뜨리기 싫은 상황, 참 현실적인 공포의 모습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그렇게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이 깨지는 순간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며’ 찾아온다. 우준영(임시완)이 그날 그 버스 안에서 손에 넣은 것은 나미의 스마트폰이면서, 동시에 그 스마트폰에 ‘통째로 들어있는’ 나미의 삶 전부였다. 녹음된 여성의 목소리로 나미의 친구에게 접근하고,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다양한 정보로 그녀의 모든 것을 차례차례 파괴하는 모습이 평범한 이에겐 그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보다 더한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깜찍한 반전까지 준비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애초 일본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 영화의 리메이크판. 원작이 된 일본 영화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판은 특히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 면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한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을 만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UI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부분, 예컨대 캐릭터들이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모습이나 SNS 계정을 통해 각종 정보를 얻는 모습 등, 이전에 <서치> 같은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비주얼도 독특한 광각렌즈 등으로 구현하여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조금 독특한 부분이 있다면, 범인을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다가 짠! 하고 밝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초반부터 준영이 범인임을 알려준다는 것. 다만 작품의 다른 캐릭터들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러니까 범인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 말하자면 스릴러가 아닌 서스펜스 장르라는 이야기.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차이에 대해선 히치콕 감독이 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한 남자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상 아래엔 시한폭탄의 기폭장치가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다. 그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며, 오로지 관객만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서스펜스라고 한다.”

혹은 더 극단적으로, ‘경찰이 주인공이면 스릴러, 범죄자가 주인공이면 서스펜스’란 말도 있는데 어쩌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이런 말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 아닐까 한다. 배우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사이코 범죄자 역할을 임시완은 꽤 훌륭하게 해냈다고 본다. <비상선언>에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테러를 저지르는 역할을 태연하게 해내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배우 개인의 퍼포먼스는 좋았다.

참 멀끔하게 생겨서는, 사이코 범죄자 역에 잘 어울리는(?) 임시완

천우희의 경우도 삶이 조금씩 조금씩 망가지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구석이 있다면 김희원과 박호산의 캐스팅. 연배로 보면 임시완과 천우희의 아버지뻘인데 솔직히 너무 젊지 않나? 아니, 반대로 김희원과 박호산의 자녀 연배로 임시완과 천우희가 너무 늙은;; 것 아닌가? 각각 아빠 연배로 보이려면 조금 더 분장을 그럴싸하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뭐, 일찍 결혼을 해서 금방 아이를 가진 걸로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인생에서 맨 처음으로 썼던 스마트폰인 아이폰 3GS 이후 참 많은 스마트폰을 써봤는데, 약 10년 정도 전인가 스마트폰이 원격으로 해킹을 당했는지 아무튼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개인정보가 싹 털린 적이 있다.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당시의 내 정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겠지. 아무튼 그 이후 스마트폰으로 송금을 비롯한 모든 은행 업무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가끔은 불편할 때도 있지만 굳이 PC로 인터넷뱅킹을 하거나 ATM을 직접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바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나미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스마트폰, 작작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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