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보면 그토록 짱짱한 어벤져스 멤버들 가운데서도 ‘앤트맨’ 스콧 랭은 참 독특한 캐릭터였다. 일단 무엇보다 이렇다 할 특별한 능력이 없다. 특별한 혈청을 맞은 무적의 군인도 아니고, 백만장자 플레이보이도 아니고(이것도 나름 능력이라면 능력), 탁월한 전투 기술도 없고, 아무튼 몸의 크기를 갑자기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수트를 가진, 그저 별 볼일 없는 전직 좀도둑.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가장 흥미로운 서사가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앤트맨이라고 할 수 있다. 스콧 랭이 가진 능력과 그가 맞서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 사이의 차이가 긴장을 만들어낸 것. 완벽한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나름 슈퍼히어로로서의 캐릭터 구축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앤트맨> 시리즈는 1편과 2편에서, 그리고 MCU에서 장대한 복음과도 같았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도 가족의 복원을 내내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족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게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어벤져스 멤버들 중에서도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 가족의 소중함이란 가치를 가장 우선시했던 캐릭터가 바로 앤트맨 아니었나?
그뿐인가? 앤트맨 옆에는 MCU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만한 매력적인 사이드킥도 있다. MCU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루이스가 바로 그. ‘인피니티 사가’ 이후에 개봉하는 MCU 영화들에 어떻게든 루이스를 출연시켜 ‘타노스의 핑거 스냅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특유의 속사포 같은 수다(…)로 상황을 설명해주는 씬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부르짖은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도 <앤트맨> 시리즈는 MCU 내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매우 다른 색깔과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1편은 시작부터가 주인공이 자신의 직업을 살려 도둑질(…)을 하는 내용이고, ‘어딘가에 잠입해서 뭔가 매우 중요한 걸 훔쳐오는’ 장면은 꼭 나왔다. 진지하거나 심각한 구석은 없고, 새털처럼 가볍고 경쾌한 하이스트 장르의 전형을 보는 듯한 느낌. 그 소소한 재미를 <앤트맨> 시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
지금까지의 글을 읽은 독자라면 어딘가 어색한 부분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은 이전까지의 시리즈에 대한 건데? 그렇다. 앞서 이야기한 <앤트맨> 시리즈의 각별한 재미를, 안타깝게도 이번 최신작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이하 <퀀텀매니아>)에선 맛볼 수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퀀텀매니아>의 내용을 살펴보자. ‘뭐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곱씹어볼 여지도 별로 없는 계기로 인해’ 앤트맨 집안의 식구들, 그러니까 스콧, 호프, 그리고 딸 캐시, 초대 앤트맨인 행크와 재닛 등 3대가 사이 좋게(?) 아원자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연하지만 우리의 맨눈으론 보이지도 않는 작디 작은 세계가 알고 보면 엄청나게 넓은 우주와도 같다는 설정은 지난 1960년대에 나온 <마이크로 결사대> 같은 영화에서 이미 봤던 거긴 하지만 역시나 발전한 CG 기술 덕분에 눈은 호강을 한다.
그런데 그 아원자 영역에선 사람도 아니고 미생물도 아닌, 하여튼 희한한 존재들이 나름의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었고, 놀랍게도(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지배/피지배의 계층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 다양한 차원과, 타임라인과,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빌런 ‘정복자 캉’이 아원자 영역에서 철권통치를 하고 있었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던 재닛이 왜 그런 부분에 대해 가족들에게(그리고 ‘어벤져스’ 멤버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작중에서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긴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압제에 대한 반란. 이전에 <퀀텀매니아>를 본 관객들 중 많은 이들이 왜 ‘<스타워즈>를 연상시킨다’고 했는지 알 수가 있게 된다(사실 아원자 영역에 들어선 앤트맨 가족은 복장부터가 이미 <스타워즈>의 반란군 차림과 매우 비슷하다). 명실상부 반란군의 지도자가 되어 강력한 독재자와 맞서 싸우는 스콧 랭. 그리고 그의 딸과 호프. 그리고 개미 군단(?).
나름 장대하고 스케일도 크며 관객의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기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문제는 이 이야기가 앤트맨과 잘 어울리는가 하는 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앤트맨> 시리즈는 소소한 재미가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는데, 마치 세상의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진 듯한 모습으로 강력한 빌런과 맞서 싸우는 앤트맨이 영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물론 앞으로 계속 나올 MCU의 간판 빌런, 정복자 캉에 대해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 그런데 그 정복자 캉은, 또 엄청 강력하게 그려지긴 했나? MCU에 데뷔한 조나단 메이저스의 연기가 나쁘진 않다. 그런데 자기가 했던 말을 곧바로 뒤집어 버리는 모습도 그렇고, 거느리고 있는 부하들도 영 비실비실하니 전체적으로 카리스마가 느껴지질 않는다. 아니 그렇게 강한 존재라면서 ‘특별한 능력도 없는 전직 좀도둑’하고 막상막하의 주먹 대결을 펼치는 꼴은 또 뭐람? 그 전직 좀도둑이 어벤져스 활동을 오래 하면서 엄청난 격투 실력을 갈고 닦았다고 해두자. ㅋㅋㅋ
좋은 부분도 있었다. 특히 이전까지 <앤트맨> 시리즈에선 스콧이 개미만큼 작아져서는 개미들과 교감을 하고 개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부분까지 그려지긴 했지만, 앤트맨 자체가 개미의 습성을 그대로 체화하는 부분의 시각적 구현까지 이루어지진 않았는데 이번에 스스로가 개미 군단이 되는 장면은 꽤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 빌 머레이 옹도 출연하는데 그냥 출연 자체만 반가운 정도. 이 대배우의 역할을 그렇게밖에 구상하지 못한 게 영… 스콧의 딸 캐시 역 캐서린 뉴턴은 앞으로 MCU에서 더 자주 출연하고, 더 많이 쓰이려면 표정이나 눈빛을 좀 더 다양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대치를 한참 낮추고 보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겠지만,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MCU 팬들은 ‘인피니티 사가’를 통해 눈높이가 한참 높아진 상태. 앞으로 마블은, MCU는 어떤 묘수를 내놓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