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역설이 된 재난, ‘밤의 여행자들’(by 윤고은)

예전에 잠깐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 하나. 피지컬이 뛰어난 개그맨이 리더가 되고 배우, 아이돌 그룹의 멤버, 모델 등의 연예인들이 팀을 이뤄 정글, 사막, 외딴 섬 같은 오지를 찾아 다니는 TV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그램의 촬영 도중 현지에서 만난 원주민들이 출연진에게 다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자(정확히 말하자면 ‘연출하자’) 리더 격인 개그맨이 출연진 앞에 나서며 이렇게 외쳤다.

“이 분들을 놀라게 해선 안 돼!”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것은 그저 과한 설정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사람들은 방송에서 ‘만들어진 그림’을 연출하는 일에 대해 다소 비판을 하는가 싶더니 곧 그런 비판은 쑥 들어갔으며, 그 프로그램은 여전히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한 끼 저녁식사를 위해 사투에 가까운 천렵을 해야 하고 밤새 모기에 뜯기며 잠을 설치는 불편함 대신, 안온한 거실에서 대리만족을 하길 원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방송국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에 그 답이 있다. 쾌감은 인플레이션을 이루게 되고, 당사자들에겐 기억조차 돌이키기 힘든 재난 상황을 실제 몸으로 겪는 여행상품이 개발된다. 이른바 재난여행.

재난여행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하루 중 대부분을 바치는 회사에서 재난 상황(직장 상사의 성추행, 업무에서의 누락)을 맞이하는가 싶더니, 잠시 떠난 출장지에서도 재난 상황(여권과 지갑 등을 분실하고 귀국 비행기를 놓침)이 도래하는가 하면, 결국 직접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재난 상황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밤의 여행자들’ 작가 윤고은

문학작품을 읽을 때 그 안에 담고 있는 함의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밤의 여행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사실 이 작품에선 함의는커녕 작품 내의 모든 요소들은 언급하는 바가 너무나도 명백해서 오독의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다. 몸소 재난을 겪었고, 앞으로 겪게 될 주인공, 가상의 섬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독재권력(에 가까운 거대자본), 생활을 위해 연기 아닌 연기를 하는 섬의 원주민들, 그리고 결국 완벽한 재난 상황이 ‘연출’되는 대신 실제로 일어나버리고 마는 상황 등은 작가가 나름 치밀하고 기획하고 구현한 세상사일 터다.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웠던 점이라면 몇몇 대목에서 발견되었던 설정상의 허점. 작품 내에서 파울이 기획하는 인위적인 재난 상황에 대한 부분에선, 이토록 커다란 규모의 일이 과연 제대로 수행되기까지 기밀유지가 잘 될 것인지(일단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외국인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당키는 한 것인지, 일단 악당으로 설정된 주인공의 직장 상사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으로 보였다든지 하는 정도가 아쉬웠던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 속에서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꼼꼼하게 잘 배치된 작품이라는 느낌. 모처럼 젊은 한국 작가의, 스케일 큰 모험담(?)을 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밤의 여행자들’은 지난 2013년에 처음 출간이 되었는데, 출간 이후 시간이 좀 지난 2021년 7월 영국추리작가협회(CWA: Crime Writer’s Association)가 시상하는 대거 상을 수상했다(영역본 제목은 The Disaster Tourist). 한국 작가가 꽤 이름이 알려진 해외의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16년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실로 축하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은 있다. 영국추리작가협회의 대거 상은 주로 스릴러, 추리 등 장르의 작품들을 후보작에 올리고 시상을 하는데, 과연 ‘밤의 여행자들’을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그것. 물론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서도… 필시 이 작품의 국내외 판권을 갖고 있을 민음사는 대거 상 수상을 위해 ‘밤의 여행자들’에 대해 어떤 프로모션을 어떻게 펼쳤을까?

뭔가 엉뚱한 게 궁금해지는 순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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