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디스토피아의 시대, 그래도 희망은 있는가: [칠드런 오브 맨]

인류가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는 디스토피아의 상황을 그린 수많은 작품들이 스쳐 지나간다. 핵전쟁이나 외계로부터의 침공으로 인한 세상의 멸망 시나리오는 지금 들어보면 조금 옛날 감성(?) 같고, 자연재해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야기도 은근히 많다. 그리고 비교적 근래 들어선 인간의 피조물인 기계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도 많이 조명되는 듯하다(근래라곤 했지만 이 분야의 역사도 사실 매우 오래되긴 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실제로 ‘로봇’이란 단어가 맨 처음으로 쓰인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에서부터 이미 로봇은 인간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근데 이게 1920년의 작품이다!).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아무래도 코로나 19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사람에게 치명적인 역병이 발생하여 인류를 절멸시키는 이야기가 ‘그나마’ 실감이 좀 나는 듯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현실에 가까운,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실존하는 위협으로 제기된 문제를 내용으로 다룬 영화가 있다면, 어떨까? 게다가 영화 개봉으로부터 불과 10년 뒤에 벌어질 심각한 사회문제를 예견하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거의 예언서에 가깝다고 할 법하지 않은가?

바로 2006년에 개봉한 <칠드런 오브 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이 작품은 당시 국내에선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고(전주국제영화제에서만 공개) 공식 개봉일 10년이 지난 2016년에야 극장에서 개봉을 할 수 있었다. 하필 국내 극장 개봉이 2016년인 것도 참 절묘한데 ㅋㅋㅋ 이에 대해선 뒤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칠드런 오브 맨>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많이 늦게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고 인지도 자체가 그리 높은 작품이라고 보긴 힘들기 때문에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까운 미래인 서기 2027년의 세상은 꽤 암울한데, 바로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다. 작중에선 18세, 그러니까 영화가 개봉한 2006년에 세상의 마지막 아이가 태어났고, 그렇게 가장 어린 아이가 사망을 하면 바로 그 직전에 태어난 아이가 ‘인류의 마지막 아이’가 되는 셈이다. 덧붙여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인데, 영국 못지 않은 재난상황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다. 짤막한 뉴스 스팟이 이어지는데 대략 미국에선 전쟁이 벌어진 듯하고 아시아 일대는 호우로 수장이 됐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시민들의 소요 사태와 테러 등이 벌어진, 그야말로 아포칼립스 상황.

‘공인된 세상의 마지막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은 전 영국 국민들의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놀랍게도 한 여인이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알게 된다. 자,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 궁금하신 분은 지금 빨리 OTT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다수 OTT 서비스에서 <칠드런 오브 맨>을 시청할 수 있다.

2023년에 이 영화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은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보다 사망하는 숫자가 훨씬 더 많은, 말하자면 인구소멸 사태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여러 가지 통계가 있는데, 그냥 다 제쳐두고 서울과 수도권, 부산과 경남, 세종시 정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에는 10대 ~ 30대 정도에 속하는 세대가 사실상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 바로 이런 상황만 봐도 <칠드런 오브 맨>에서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상황이 2023년 대한민국에 재현된 상황과 다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앞서 말한, 국내 개봉 연도가 2016년이란 점이 참 절묘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2016년은 영국이 EU에서 탈퇴를 한 ‘브렉시트’가 있었던 해로, 이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영국 국민의 상당수는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이민자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칠드런 오브 맨>에서 이민자들을 마치 전쟁포로 다루듯 하는 영국군(작품 내에서 명확히 언급되진 않지만 작중 영국 정부는 대단히 강압적이고 독재적인 철권 통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의 모습이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설마, 하필 2016년에 <칠드런 오브 맨>이 국내 극장 개봉을 하게 된 건 브렉시트를 기념(?)하기 위해서였을까? ㅋㅋㅋ 그럴 리야 없겠지만 1억 분의 1 확률로 만약 정말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악취미이자 세상 다시 없을 블랙코미디가 분명할 것이다. ㅋㅋㅋ

각설하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결국 인류의 마지막 아이는 새 희망을 찾아 떠난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된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것인데, 아이의 엄마인 ‘키’는 이민자 출신인 흑인이며, 몸을 파는 여인이었던 것(주인공이 키에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난 처녀예요”라는 농담까지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은유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명백한 ‘예수’에 대한 언급이라고 본다. 2023년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예수 정도 되는 급(?)의 초월적 인물이나 일대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래를 더 이상 기약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면서 ‘희망’을 약속하지만…

저항군과 정부군이 대치한 상황, 아기가 엄마와 함께 나타나자 총격이 멈추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대단히 장엄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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