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음침함, 이유 있는 중2병: [웬즈데이]

항상 검정색 옷을 입고 다니고, 주변 사람 누구에게든 대단히 냉소적인 말투로 대꾸하거나 차갑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이는 소녀가 있으면 우리는 보통 그런 아이를 ‘중2병에 걸렸다’고 한다. 대략 중학교 2학년의 나이인 14세를 전후로, 잠깐 사춘기의 극한을 맞이한 상황을 일반적으로 중2병 증세라고 진단(?)을 내리며, 보통은 한두 해만 지나면 스스로도 그와 같은 행동을 ‘흑역사’로 치부해버리기 일쑤.

그런데 그 소녀가 동물 사체를 부검하는 취미를 갖고 있고, 수영장에 육식성 피라냐를 풀어놓아 남학생의 고환(…)을 제거(!)하는가 하면, 망자와 환영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가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쨌든 그런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늑대인간과 세이렌과 고르곤이 재학 중인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데 팀 버튼이 제작(및 일부 에피소드 연출)을 맡았다고? 분명 소수이긴 하겠지만 바로 그 소수에겐 확실히 ‘취향저격’일 수 있는 작품, <웬즈데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웬즈데이> 자체는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고, 원작은 <아담스 패밀리>이다. 그 원작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백년 가까운 옛날인 1930년대에 코믹스로 처음 나와서 TV 드라마 및 영화(두 편이 나왔고, 그 중 1편은 최초 팀 버튼에게 연출 제의가 갔으나 무산되어 배리 소넨필드가 연출),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소개되었다. 나름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다양한 콘텐츠가 나온 셈.

‘아담스 가족’의 장녀 웬즈데이가 본 시리즈의 주인공

때로는 사람 같지도 않은(?) 모습을 보이는(이 가족의 일원 중엔 ‘Thing’이란 이름의 ‘손’이 있다) 이 기괴한 가족은 특유의 비틀린 유머 덕분에 인기를 얻었고 꽤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게 되었다. 혹자는 미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1950년대 ~ 70년대 가족 시트콤의 안티테제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평론가스러운’ 이야기 같고… 그저 보고 있으면 피식 하고 웃게 만드는 상황과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취향만 맞는다면 아주 즐겁게 볼 수 있는 점이 장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작품이 다양한 장르로 소개되며 인기를 얻고 인지도도 확보해서 그런지 본작 <웬즈데이>에서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큰 공을 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아담스 가족 중 장녀인 웬즈데이가 집을 나와 네버모어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짜이면서, 공간적 배경이 제리코와 네버모어 학교 등으로 오히려 넓어졌다. 그만큼 스케일도 커졌고, 출연하는 캐릭터들은 다양해졌으며, 웬즈데이가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더 넓어졌다.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담스 패밀리>에선 가족 구성원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가 자아내는 소소한 재미가 주된 테마였던 것과 확실히 비교가 되는 부분.

특히 작중 웬즈데이가 들어가면서 주요한 공간적 배경이 된 네버모어 아카데미는, 여러 모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어떤 특정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그룹을 짓는 모습이나, 기숙동별로 정기적인 대항전을 개최하여 승자를 가린다거나, 선생들이 상당히 수상쩍어 보이는 것 등이 모두 그렇다. 아, 소수의 학생들이 폐쇄적인 사교 모임을 갖는다는 것도 그렇고.

이는 굳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의식했다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웬즈데이’라는 캐릭터를 아담스 가족으로부터 떼어놓고 주인공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구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학교’라는 집단의 특성상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뭉치거나 아니면 서로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보여주기에 용이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쨌든 ‘별종(freak)’들의 기숙학교라는 배경은 여러 모로 흥미롭게 작용한다.

눈 하나 깜빡 않고, 급우를 고자(…)로 만들어버리는 웬즈데이

총 에피소드 8편이 첫 번째 시즌에 담긴 <웬즈데이>는,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의 이야기로 네버모어 아카데미의 존립이 위협받는 내용을 두고서 몇몇 소소한 곁가지 이야기들을 준비해놓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괴물의 실체도 드러나고, 웬즈데이의 엄빠 고메즈와 모티시아의 과거의 편린, 웬즈데이가 만난 환영의 정체도 확인하게 된다.

<웬즈데이>가 시청자에게 주는 재미의 상당부분은 당연히 제작(과 일부 에피소드 연출)을 맡은 팀 버튼의 취향이 대거 반영된 부분일 터다. 사실 팀 버튼은 작품 내에 도도히 흐르는 특유의 취향 때문에 열광적인 팬이 많은 편이지만, 그의 작품 중 꽤 좋은 평가를 받는 <빅 피쉬>만 해도 벌써 20년 전의 작품이고 이후의 작품 중에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미스 페레그린>, <덤보> 같은 작품은 솔직히 재능 낭비 아니었던가. 말하자면 <웬즈데이>는 절치부심 끝에 첫 TV 드라마 제작과 연출을 맡아서 ‘누구나 팀 버튼임을 알아볼 수 있는’ 인장을 쾅 박아버린 작품으로 다시 호평을 이끌어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취향이 맞는 경우에 한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 팀 버튼 특유의 비틀린(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유머 코드를 좋아한다면 제대로 취향저격! 반면 영화나 드라마에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용적’인 세계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라면 “도대체 이게 뭔데?”란 소리만 계속 나올 것이다(혹시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의문이라면, 일단 첫 번째 에피소드만 보면 ‘각’이 딱 나온다). 어쨌든 <웬즈데이>는 12월 현재 기록적인 시청 시간(전 세계에서 무려 약 8억 시간!)을 보이면서 2시즌 제작이 확정됐다. 귀여운 음침함의 소녀, 웬즈데이를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웬즈데이 역 제나 오르테가, 룸메이트인 이니드 역 엠마 마이어스 모두 아주 귀엽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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