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들어가며: 본 글에는 부득이하게 <몸값>의 스포일러가 일부 담기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독자는 해당 부분을 감안하여 글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고사를 막 마친 학생이, 기분전환 삼아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러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에 갔다. 이제 입사 2개월차인 신입사원이, 거래처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낼 때 엉뚱한 파일을 첨부하는 바람에 팀장한테 호되게 깨져서 스트레스도 풀고 오랜만에 동창도 만나서 맥주도 마실 겸 마침 구경거리가 가득한 동네에 갔다.
1년에 단 하루. 무척 젊거나 어린 그들에게, 가뜩이나 팍팍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꿈꿨던 작은 일탈에 허락된 시간이 바로 1년에 단 하루였던 것.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고, 남아있는 이들에겐 가장 큰 슬픔이 되었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 마땅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를 가진 자들이 책임을 방기하고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이 참담한 시대. 대중문화 콘텐츠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티빙(TVING) 제작 6부작 드라마 <몸값>이야말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바로 지금, 2022년의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종서, 진선규, 장률 주연, 전우성 감독(다수의 단편영화 연출 경험이 있고 장편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연출의 <몸값>은, 이미 소규모 단편영화 작품들에 관심이 많은 팬들과 관련 미디어 종사자들 사이에선 큰 화제가 되었던 동명의 단편영화로부터 출발한다. 참고로 원작은 러닝타임 약 14분 정도로 아주 짧으면서도 굵직한 이야기를 담아냈는데, 본작은 원작이 끝나는 지점에 난데없이 지진(으로 추정되는 재난)이 발생하고 공간적 배경이 되는 건물을 토사가 덮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품의 제목인 <몸값>은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다. 여고생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러 온 형수(진선규)는 성매매 금액을 흥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형수에게 성매매를 제안했던 여고생 주영(전종서)은 사실 여고생도 아니었고, 사람을 납치해서 장기를 도려내 판매하는 조직의 일원. 그녀에게 사람의 장기는 그저 상품일 뿐이다(와중에 사람의 장기 가격이 ‘의외로’ 높게 책정되어 있다는 점에 놀랐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식할 신장을 구하기 위해 불법적인 장기 매매에 참여한 극렬(장률)에게도 타인의 가치는 그저 ‘1억 3천만원짜리 신장을 떼내야만 하는’ 존재 정도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나름의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
그렇게까지 드물지는 않은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계기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난데없이 발생한 재난상황. 불법적인 장기 매매(경매)의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불건전한 의도를 갖고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일부는 잠시나마 협력을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를 밟고 올라서려는 악다구니를 펼친다. 살기 위해선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묵시록적 현장.
어쨌든 <몸값>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러닝타임 전체가 한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쇼트의 시작과 끝이 따로 없고 카메라가 계속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장면을 담아내는데, 이는 원작이 된 단편영화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고 바로 그 부분 때문에 화제가 되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원작에서는 바로 그와 같은 카메라워크 자체가 관객의 허를 찌르는 핵심 요소가 되기도 했다.

‘도대체 세트를 어떻게 차린 거지?’ 이 작품의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보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쇼트와 쇼트가 이어지는 편집점이 가끔 보이긴 하는데 비슷한 카메라워크를 선보였던 넷플릭스 작품 <카터>와 비교하면 매우 ‘정교하다’.
그렇다면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이 작품에서 왜 그렇게 특이한 카메라워크를 고집했을까? 앞서 언급한 원작 단편영화의 경우와 달리, 본 작품에선 전체적인 스케일이 무척이나 커졌다는 점을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하다(이에 대해선 뒤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한 모텔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때 바로 그 방 안에 있던 카메라는, 복도를 지나, 훨씬 더 넓은 방으로 이동하더니, 재난이 모텔 건물을 뒤덮은 후에는 지하실로, 환풍구 비슷한 좁은 통로를 지나서 펜트하우스로 가서는, 결국 모텔을 빠져 나온다. 이 모든 배경이 한 컷으로 이어진 것이다!
바로 그래서 제작진이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그리며 각 캐릭터들과 카메라의 동선을 구성하는 데에 진짜 머리에 쥐가 났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불어서, 전체적인 스케일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순히 <몸값> 자체의 볼륨이 크다는 점 외에도, 향후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의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게 될 작품들의 이른바 ‘콘크리트 유니버스’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아직 제작 주체가 명확히 알려지지는 않은 이 세계관에서 만나게 될 작품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엄태화 감독(<가려진 시간> 연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허명행 감독(여러 작품의 무술감독 출신이며 <범죄도시 4> 연출 예정)의 <황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사력을 다해 토사로 뒤덮인 모텔을 빠져 나온 주인공들의 앞에 펼쳐진 세상은, 당연하게도(?) 이전까지 그들이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니었다. 그 탈출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까지 한 행동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단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콘크리트 유니버스’와, 시민의 안전 보장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자들이 권력을 가진 세상이 자꾸만 겹쳐 보여 무섭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