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글리치(Glitch)’란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자. ‘밀리거나, 미끄러지다’라는 뜻의 독일어 ‘glitschen’에서 왔다고 하며, 컴퓨터 게임이나 영상 콘텐츠 등에서 프로그램상이나 하드웨어상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 현상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뜻하지 않은 상황이나 행태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 점에서, 가끔 외계인을 (혼자서만)보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외계인에게 납치된(것으로 믿는) 주인공은 참 잘 어울린다(?). 그뿐인가? 주로 외계인, UFO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파헤쳐서 콘텐츠화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일에만 몰두하는 또 다른 주인공도 나오니, 그런 드라마의 제목으로 <글리치>란 단어가 더없이 적절해 보이는 것이다.
홍지효(전여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만 한 가지 그녀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가끔 장소 불문하고 갑자기 출몰하는 외계인을 보고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물론 그녀가 보는 외계인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질 않는데, 그녀가 외계인을 보고서도 소스라치게 놀라지도 않고, 주변 사람에게 “저기 저거 좀 보세요! 외계인이에요!”라고 외치지도 않으며, 경찰에 신고(?)를 하지도 않는 이유는, 모르긴 몰라도 이전에 여러 번 그렇게 했다가 ‘거 이상한 사람이네’라는 소리만 들으며 철저히 무시를 당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그녀의 그와 같은 행태는 그녀가 어렸을 적 강제로 맞이한 것으로 추측되는 모종의 이상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 또한 타당하다. 중학생 시절 홍지효는 며칠간 실종된 경험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정신을 잃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하는 상황. 한 가지 (그녀의 기억 속에서)확실한 것은, 당시 실종에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였던 보라(나나)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
서로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헤어진 둘은 한참 뒤에 다시 만난다. 이 부분에서 다분히 흥미로웠던 설정은, 둘 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홍지효는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엄연한 직장인이긴 하지만 그 직장의 사장은 아버지의 친구. 고만고만한 규모의 회사에 이런 경우, 은근히 많다.
지효의 동창이자 ‘버디’가 되는 보라는, 아예 직업조차 없는 백수다. 일단 겉으로 보이기엔 주로 UFO와 외계인에 관한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버로 보이긴 하지만, 구독자 수 1천 명 달성을 기념하는(?) 파티를 연 데서도 볼 수 있듯 유튜브가 그녀에게 큰 수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온몸을 뒤덮은 타투. 그리고 줄담배와 말끝마다 내뱉는 질펀한 욕설. 분명 정상적(?)인 직장에서라면 감당하기 힘든 애티튜드일 것이다.

SF로 보이기도 하고, 스릴러로 보이기도 하면서, 코미디로 보이기도 하다가, 그 모든 장르가 헛발질(?)로 보이기도 하는 <글리치>라는 드라마가 하필이면 이렇게 불완전한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혹시 바로 그 주인공 세대가 지금의 사회를 ‘몹시 어지럽고 모호’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경제적인 면을 살펴보자. 주인공 지효와 보라의 나이가 대략 30대 초반이라고 하면 그래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약 5년에서 7~8년 정도 되었을 터. 경제활동을 하긴 하지만 아직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기는 약간 힘든 나이이고, 바로 그래서 어쩌면 결혼보다 (경제적인 면에서)훨씬 더 현실적인 동거를 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테마 측면. <글리치>에는 초반에 외계인도 나오고, 미스터리 서클 비슷한 것도 나오고 하면서 분위기(?)를 잡더니 이내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 ‘종교’는, 교인들이 모두들 VR 기기를 쓰고서 함께 주기도문을 읊곤 하는데 이 장면이 매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로테스크하게도 느껴진다. 아무튼, 사이비 종교엔 어떤 사람이 빠지게 되는 걸까? 혹시 나이가 젊다고 해서 (고령자에 비해 상대적으로)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하는 일은 적다고 생각한다면, 매우 큰 오산이라고 하겠다. 오히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말하자면 사회적 자산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사회경험도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당연히 모아놓은 것도 별로 없는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글리치>는, 가장 불안하게 2022년을 살아가는 세대가 내놓은 사회적 고발장인 셈이다. 물론 그 고발장은 과거 몇 번의 비슷한 사례에서 본 것처럼 비장하지도, 진지하지도, 단호하지도,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새털처럼 가볍게, 인터넷 이곳 저곳에서 긁어 모은 밈(Meme)처럼 유쾌하게. 어쩌면 그들은 현실의 사회 대신 VR 기기 안에서 극도의 평온을 찾고자 할지도 모르겠다.
진한새 작가의 전작이었던 <인간수업>과 <글리치>는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이긴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불안하고도 위태로운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가운데 한국 드라마 라인업에서 가장 어두운 작품과 가장 가벼운 작품의 작가가 동일인이다! 그리고 이번에 자료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진한새 작가는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등으로 유명했던 송지나 작가의 아들이라고.
가끔 대사가 작위적이란 느낌은 들지만, 전여빈은 흔들리고 부딪히는 주인공 지효 역을 참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작인 <죄 많은 소녀>와 <빈센조> 등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란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전여빈 말고 다른 배우를 지효 역에 생각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뜀박질에 아주 능하다! 허보라 역 나나의 경우는, 이전에 별로 본 적이 없는 배우라서 판단을 내리기에 조금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평이했다고 생각하고. <글리치>에서 가장 훌륭한 퍼포먼스는 단연 화정 역의 백주희 배우에게서 볼 수 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수다스럽고 쓸데없이(?) 친절한 부동산 업자. 그런 사람이 실제론 사이비 종교의 집사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으스스해지는 게 바로 백주희 배우가 그만큼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