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들어가며: 본 리뷰의 제목에도 직접 언급이 되지만, 본 글에는 본의 아니게 ‘포르노’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게 됐습니다. 다만 이성간(혹은 동성간) 노골적인 성애 묘사가 사실상 전부인 ‘진짜’ 포르노 대신, 그와 유사한 흥분감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새로운 조어(造語)가 된 형식으로 주로 등장하는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포르노그라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물론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구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이성간(혹은 동성간) 성애를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진짜’ 포르노일 터. 그런데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참 열심히 먹는 것 자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푸드 포르노’나, 가난함을 볼거리로 전시하며 사실상 특정한 행위(강제기부)를 강요하는 ‘빈곤 포르노’, 창작물로서 주인공을 비현실적인 수준의 불행함으로 몰아넣는 ‘불행 포르노’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콘텐츠들에, 왜 하필 ‘포르노’란 이름이 붙었을까? 그 이유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포르노가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즉물적인 쾌락일진대, 그런 측면에서 가장 적합한 단어이자 대상이 바로 포르노가 아니면, 무엇일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먹방을 보면서 ‘저렇게 체구도 작고 여리여리한 여자가 어떻게 삼겹살 20인분을 먹을 수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게 된다. 그 모습이 그저 희한할 뿐. 폐지를 주우러 동네를 돌아다니는 할머니에게 새 운동화 하나 사달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공공복지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 대신 그저 ‘한 달에 후원 1만원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의 반사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앰뷸런스>를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포르노’를 먼저 언급한 이유가 있다. <앰뷸런스>는 무엇보다 확실한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원래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장점이었던 숨가쁜 액션과 화끈한 총격전, 긴박감이 넘치는 차량 추격전과 화려한 폭발, 그 모든 것들이 이 작품에서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특히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촬영 분량은 예전 <본 슈프리머시>나 <007 퀀텀 오브 솔러스>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카메라맨의 1인칭 시점과도 또 다른 느낌이어서 앞으로 얼마나 현란한 모습을 보게 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원래 포르노에선 부족한 게 없다. 다 보여주는데 부족한 게 뭐가 있을까? 모든 게 차고 넘친다. 바로 그 점에서, 그러니까 보는 내내 한 순간도 잡념에 빠지지 않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앰뷸런스>를 이른바 ‘추격전 포르노’, ‘총격전 포르노’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워진다.
그게 나쁜 의미냐고? 그렇지는 않다. <앰뷸런스>를 보고서 재미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다만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내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이 관객을 다소 피로하게 만들긴 한다. 그런 부분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전작인 <13시간>처럼 매우 담백한(?) 영화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CG도 거의 없이 진짜배기로 자동차를 부수고 자빠뜨리면서(…) 도시를 질주하는, 이런 영화가 은근히 반가운 관객도 있을 듯.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제이크 질렌할과 야히야 압둘 마틴 주니어, 그리고 에이자 곤잘레스 등은 (내러티브가 그렇게까지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지만)나름 각자의 캐릭터에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이크 질렌할은 참 멀쩡하게 생겨선(?) 악독한 범죄자 역할에 은근 잘 어울리는 모습.
한 가지 덧붙이면, 감독의 전작인 <더 록>과 <나쁜 녀석들>에 관한 드립이 나온다. 고백하자면, 이 드립 부분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세대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대화인데, “너 <더 록> 알잖아?” “네, 알죠. 그 사람 원래 이름이 드웨인 존슨이죠, 아마?” ㅋㅋㅋ) 마이클 베이 감독의 나쁜 버릇 중 하나가 뜬금없는 저질 개그였던 걸 생각하면 나름 발전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