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리남]

2022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서, 넷플릭스에 <수리남> 출격!

자신의 작품을 본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많은 창작자들은 오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려하고 선택해야 할 사항은 사실상 무한대. 그런 와중, ‘실화’가 바탕이 된 이야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만들어진 이야기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고, 더 희한하며, 하여튼 더 재미있거나 기가 막히는 사연일 경우에 한할 터다.

한 제3세계 국가에 거대한 마약 왕국을 일구어 어마어마한 부를 쌓고,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막후에서 주무르는 ‘어둠의 군주’ 이야기는 이전에도 <나르코스> 등을 비롯해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직간접적으로 다룬 바 있다(개인적으로도 <나르코스>와 <브레이킹 배드> 같은 드라마를 매우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따지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참 많이도 나온, 빽빽한 밀림 속에 궁전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그런 마약왕 이야기 자체가 사실을 반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한국인이 그런 희대의 마약왕으로 나오는 드라마라니? 게다가 그게 실화? 당연하지만 우리는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윤종빈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포인트에서 진작부터 관객의 흥미와 기대를 충분히 자극하고 시작한다.

<수리남> 공식 포스터

개인적으로는 수리남이란 나라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지난 1988년에 서울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서 수리남 선수가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 강인구(하정우)는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댔으나 딱히 성공한 적은 없는 평범한 가장. 그런 어느 날 친구로부터 ‘남미에 위치한 작은 나라 수리남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는데 그 나라에선 홍어를 그냥 버린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홍어를 수입해서 우리나라에서 팔 요량으로(정보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윤!) 머나먼 나라 수리남으로 향한다. 그 나라에서 이미 큰 규모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전요환 목사(황정민)를 만나고, 도움을 받는 와중 한국으로 보낸 컨테이너에서 마약(코카인)이 발견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주루룩.

사실 위에 짧게 정리한 내용만 봐도 드라마 전체 이야기가 눈앞에서 쭉 펼쳐지는 듯한 느낌(본 적도 없는데 느껴지는 기시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윤종빈 감독과 (한 번 이상)작품을 함께 해본 적이 있는 하정우, 황정민, 조우진 등의 배우들은 모두 ‘가장 익숙한’ 모습이다. 하정우는 그 어떤 난관도 적당히 눙치면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고, 황정민은… 솔직히 너무 <신세계>의 정청과 많이 겹쳐 보이며, 조우진은 상황에 따라 캐릭터가 휙휙 바뀌는 바로 그 ‘명품 조연’의 느낌 그대로다. 덧붙여서 나름 철두철미한 국정원 요원 역에 참 잘 어울리는 박해수, 느물거리는 투로 영어 + 한국어 대사를 내뱉는 유연석까지도 모두 다 전에 어디서 봤던 것 같은 느낌.

100% 이미지 캐스팅으로 한 자리에 모인 이 배우들이 많은 관객에게 익숙한 모습을 이 작품에서도 보여주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주인공 하정우의 경우는 약간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리남>에서 주인공 강인구(하정우)는 화자이면서(아예 드라마 1화 처음 시작부터 내레이션이 깔린다) 이야기를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명실상부한 주인공. 그리고 이야기 흐름 자체가, 강인구의 시련 -> 극복 -> 또 다른 시련 -> 극복… 이와 같은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하정우라는 배우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도 어렵지 않게 넘어가는 이미지를 ‘매우 강하게’ 갖고 있다.

황정민은 ‘황정민’ 했고, 하정우는 ‘하정우’ 했다(?)
수리남의 중국인 갱단 두목, 첸진 역 장첸도 멋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변기태 역 조우진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퍼포먼스!

사실 작품 내에서 강인구라는 캐릭터 설정에 관해 그와 같은 당위성을 제시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한국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할 때에도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적이 있으니, 지구 반대편 수리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업을 하려면 공무원이든 동네 갱단이든 적당히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액수로 ‘딜’을 할 정도로 강단도 있고 유들유들하기도 한 캐릭터라는 설명이 강인구에게 붙는다는 것.

물론 어디서든 사태 파악에 능하고 빠릿빠릿하게 처신을 잘 하는 강인구조차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며 전요환과 연결이 되는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중요한 건 관객이(다수는 아니고 일부에 불과할지언정) 서스펜스를 느껴야 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천하태평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꽤 만족스러운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배우 캐스팅 부분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국내 관객 한정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아직 하정우나 황정민이나 조우진(그는 이 작품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뭐, 언제나 조우진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등은 해외 관객이 보기에는 다소 신선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르코스>나 <브레이킹 배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각 캐릭터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나 할까.

특히 로케 부분을 포함한 전체 프로덕션의 관리 자체가 깔끔하게 잘 됐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애초 해외 로케 예정이었던 촬영 분량 일부가 국내의 제주도 및 전주영화종합촬영소 등에서 진행된 걸로 아는데(그래도 일부 장면은 도미니카공화국 등 해외에서 촬영이 되긴 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부분도 콘텐츠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에 일조하는 프로듀싱의 힘일 것.

※ 덧붙이는 말 1)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중 전체 프로덕션, 그 중에서도 해외 프로덕션의 관리 부분이 꽤 성공적이었다고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꼽았던 작품은 바로 <모가디슈>였다. 촬영 전체를 모로코에서 했는데, 최근 모로코는 정부 차원에서 설립한 ‘국립 모로코영화센터’를 통해 세계 각국의 영상 및 영화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편의는 물론이고 세제 혜택까지 내세우면서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고, <모가디슈>도 그런 부분에서 수혜를 입은 작품. 돌이켜 보면 모로코는 진작부터 <스타워즈> 시리즈 등 다양한 영화 및 영상 콘텐츠의 촬영지로 각광을 받은 바 있다. 앞으로 글로벌한 차원에서 코로나 상황이 좀 진정되면 더 다양한 배경의 멋진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을 듯하다.

<수리남>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윤종빈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취재를 열심히 하는 대신 ‘감’을 믿고 쓰는 편”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런 모습은 <범죄와의 전쟁>과 직후의 <군도> 정도까지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장르적으로 봤을 때 디테일이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후의 <공작>이나 본 작품 <수리남>의 경우는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인 만큼 시나리오 단계에서 취재와 사전 조사를 엄청 ‘빡세게’ 했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그의 필모를 보면 의외로(?) 시나리오나 연출 외에 제작(<검사외전>과 <돈>, <클로젯> 등)을 맡은 작품도 많아 살짝 어리버리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 이른바 ‘텐트폴급’ 작품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체급으로 올라선 느낌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방송 및 시나리오 작가들 사이에서 “넷플릭스 기원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넷플릭스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많은 대중문화 창작자들에게 이른바 ‘복음의 전파자’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아낌없는 제작비의 지원 혹은 투자!) 따지고 보면 넷플릭스도 그렇게 하면서 나름 쏠쏠하게 장사를 하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페르소나 하정우, 그리고 ‘넷플릭스 공무원’이자 전직 쌍문동 수재(?) 박해수의 케미도 bb

※ 덧붙이는 말 2) <수리남>이 나름 글로벌 흥행에 성공을 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자, 실제 수리남 정부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나섰다. 말하자면 ‘시리즈에선 수리남이 마약 관련 범죄가 횡행하는 나라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에도 대사를 통해 항의하고(우리나라와 수리남은 1975년에 수교를 했다) 제작사에 대해선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한 것.

수리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낸 입장이 실제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질지 현재로선 알 수 없으나 이와 상당히 비슷한 해프닝(?)이 이미 20여 년 전에 있었다. 지난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자카르타>가 바로 그 주인공(?). <몽정기>를 연출한 정초신 감독의 데뷔작이며 김상중, 윤다훈, 임창정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사기꾼과 은행강도들이 크게 한탕을 하고 자카르타로 도피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영화에선 ‘마치 자카르타가 사기꾼과 은행강도들이 판치는 도시’인 것처럼 묘사되었다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 아마 당시에도 법적 조치 수준의 이야기가 나오긴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친 않다.

20여 년 전, <수리남>과 똑같은 해프닝이 벌어졌던 문제작(?), <자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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