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연으로 인생 막장에 몰린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거대한 도박판에 뛰어든다. 위험하긴 하지만, 일단 이기기만 하면 평생 꿈에서도 볼 수 없는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는 판에 당신은 참여할 것인가?
넷플릭스 코리아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이와 같은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와 비슷한 설정은 특히 일본 만화, 드라마에서 많이 본 적이 있는데, 단지 그런 겉모습만 보고서 ‘도박묵시록 카이지’나 ‘라이어 게임’의 동어반복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점을 먼저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일본 만화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게임은, 게임 그 자체가 재미의 요소가 된다. 말하자면 캐릭터와 캐릭터, 그리고 캐릭터와 시청자(관객) 사이에 벌어지는 머리싸움이 공들여 연출된 반면, ‘오징어게임’의 경우 등장하는 대부분 게임의 룰이 단순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나 뽑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같은 게임은 누구나 쉽게 룰을 이해할 수 있는 게임들. 이 작품에 등장한 게임들 가운데 굳이 규칙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게임은, 맨 마지막의 오징어게임 정도일까.
또 한국인이라면 어렸을 적 누구나 다 해본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게임들에 고작 딱지 몇 장이나 구슬 몇 알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니 아이러니는 더 심화되고, ‘드라마’는 더 깊어진다. 세상에, 뽑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할 일인가! ㅋㅋㅋ 게다가 이 게임들이 벌어지는 공간적 배경은 이른바 ‘불가능의 계단’이라 불리는 펜로즈 계단을 연상시키는 한편으로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치장되었고, 게임의 운영자(?)들은 선명한 핑크색 오버롤 작업복을 입고서 권총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시청자로 하여금 인식의 충돌을 일으키게 한다. 이 역시 영리한 연출이라 할 수 있겠다.
덧붙여서, 이처럼 규칙이 단순한 아이들 게임이 ‘오징어게임’ 내에서 나오게 된 계기가 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황동혁 감독의 말에 의하면 “넷플릭스가 글로벌 플랫폼이다 보니 외국 시청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급적 단순한 게임을 등장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황동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보면, 그의 전작들은 ‘마이 파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진지한 드라마, 코미디, 사극 등, 참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에서 안정적인 연출력을 선보인 이가 바로 황동혁 감독.
그의 전작들에서 공통점을 찾아보면, 어느 한 곳 튀는 구석 없이 안정적으로 서사가 이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을 보면 전체적인 밸런스 조절 측면에서 약간 아쉬움이 보인다. 총 9화 가운데 어떤 에피소드에선 그야말로 숨쉴 틈도 없이 몰아치기도 하고, 또 어떤 에피소드에선 아주 꼼꼼한 연출이 돋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에피소드에선 다소 루즈해지는 모습도 보이곤 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극장용 장편영화와 시즌제 드라마의 호흡 차이에서 기인한 문제로 보이는데, 모르긴 몰라도 한 시즌에 에피소드가 총 9화라는, 참으로 보기 드문(?)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편집과 후반작업 과정에서 많이 덜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반적인 배우들의 퍼포먼스는 훌륭하다. 주연 이정재는 그저 도박에 빠진 무능한 이혼남을 피상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가게 된 과정, 그리고 사연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성우 역 박해수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사냥의 시간’에선 다소 아쉬웠으나 ‘오징어게임’에선 양면적인 캐릭터를 잘 살렸다고 본다. 탈북자 출신 소매치기 역의 정호연 정도가 조금 어색했다고 할까. 그 외에 일남 역의 오영수, 장덕수 역의 허성태 등도 모두 갖고 있는 능력을 십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전개와 갈등의 고조, 그리고 결말과 다음 시즌에 대한 예고(?) 격인 엔딩까지도 모두 예상이 너무 쉽다는 단점은 있으나 앞서 이야기한 장점이 그 단점을 상쇄하는 작품. 이제 우리나라에서의 공개 이후 해외에서도 공개가 되면서 역시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역시 큰 호응을 얻었던 ‘D.P.’, 그리고 ‘인간수업’과 ‘스위트홈’ 등의 작품들과 함께, 넷플릭스가 왜 한국 시장에, 한국의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지 잘 보여준 작품 리스트에 ‘오징어게임’이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