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정한 이야기가 구현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중, 다음에 나올 내용이 쉽게 예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누구나 그렇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에 소비자를 얼마나 몰입시킬 수 있는지가 바로 창작자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 소비자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다면 그것은 클리셰가 되고, 클리셰가 축적되면 장르가 되며, 나아가선 클래식이 된다.
<탑건: 매버릭>은 전작인 1986년으로부터 무려 36년이나 지나 관객을 만난 속편이다. 자신 이후에 나온, 제트파이터들이 공중전을 펼치는 세상 거의 모든 영화의 레퍼런스가 된 1편에 출연했던 주연배우가 그대로 다시 나온, 미증유의 속편.
동시에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도 힘들어지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어려워진 시대가 오기 훨씬 전의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조명이기도 하고, 컴퓨터 그래픽과 OTT가 각광을 받는 시대에 ‘시네마’라는 압도적인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역설하는 ‘진짜’ 블록버스터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걸핏하면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가 동원되는 세태 속에 배우들은 실제 제트파이터 파일럿들이 받는 훈련을 소화하고 직접 콕핏에 앉았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편견을 배격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게 마땅한 시대에 배우들은 마치 80년대 영화 속 장면처럼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바닷가에서 스포츠를 즐긴다. 전역과 진급을 거부하고 현역에 남아있길 원하는 사고뭉치 주인공은 하필이면 장성과 막역한 동기여서 직속상관이 영 불편해하는 와중, 바로 그 주인공이 직접 제트파이터를 몰고 목숨을 건 작전에 참여하는가 하면, 작동이 되긴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고물 전투기에 타곤(고백하자면 이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최신예 5세대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친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시대착오적 감성.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이토록 박진감 넘치고, 뭉클하며, 절절한데! 원래 로망이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로망인 것.
<탑건: 매버릭>은 기본적으로 전편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관람 전 가급적이면 전편을 다시 보거나 최소한 전편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린 상태에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시간20분 가량의 러닝타임 중 그 어느 한 대목도 빼놓을 수가 없는 작품.
“무인 전투기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완벽한 ‘시네마’로서의 경험, 바로 <탑건: 매버릭>에 있다. 한 번 봤으면 두 번 보시라. 두 번 봤으면 세 번 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