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에코(마이클 코넬리 作)의 Behind Scene: 주인공 해리 보슈, 그리고, 작품 이야기

세풀베다의 퇴역군인 시설에 있는 수면장애 클리닉에 다닌 적도 있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사들은 그의 수면 패턴에 주기가 있다고 말했다.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깊은 수면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데, 그때 바로 고통스러운 꿈들이 침입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런 잠을 경험하고 나면, 몇 달 동안 불면증이 이어졌다. <본문 중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베트콩들이 정글 곳곳에 파놓은 ‘땅굴’을 수색하고 폭파하는 이른바 ‘땅굴쥐’라는 특수 임무를 맡았던 주인공 해리 보슈는 귀국 후 LAPD 강력계에 근무하는 형사가 된다. 그가 당직을 서고 있던 어느 날, 베트남전에서 자신과 함께 같은 임무를 수행했던 전우가 LA 외곽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 전우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자신에게 지독한 악몽을 선사했던 정글의 땅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범죄 / 스릴러 장르의 작가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1992년 데뷔작인 ‘블랙 에코’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이 작품에서 첫 출연하여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장기 근속(?)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해리 보슈. 최근엔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시리즈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보이면서 다시 조명을 받게 된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을 다시 돌아본다.

미국에서 특히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작가 마이클 코넬리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면, LA타임스에서 사건 및 범죄 관련 기사 작성을 전문으로 하는 기자 출신이라고 한다. 바로 그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LAPD의 ‘독고다이’ 형사 해리 보슈의 디테일을 완성했다고. 조직 내에서 좌충우돌하면서도 경찰 업무에는 탁월한 해리 보슈 스타일의 경찰 캐릭터는, 30년 전인 90년대 초반에도 솔직히 그다지 신선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이어지면서 드라마로도 7시즌이나 나오게 된 데에는(‘BOSCH’란 제목의 드라마) 작가 마이클 코넬리가 공들여 다듬은 캐릭터의 디테일과 매력적인 배경 스토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해리 보슈에겐 몇 가지 독특하고 흥미로운 설정이 있다. 일단 LAPD에서 근무하는 형사 봉급으론 꿈도 못 꾸는 할리우드 언덕 중턱, 뷰가 근사한 동네에 위치한 집에 산다(작품 내에선 형사가 주인공인 인기 TV 드라마에 슈퍼바이저 비슷한 역할을 하고 큰 돈을 받은 걸로 나온다). 클리포드 브라운과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곡을 좋아하고, 1960년대 팝아트 작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을 좋아하며, 거친 일에 종사하지만 항상 니트 타이를 메고 다닐 정도로 패션 감각도 뛰어난 편.

해리 보슈가 ‘시카고 미술관에서 1시간 동안이나 흠뻑 빠져서’ 봤다던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

그런데 그에 관한 그 모든 ‘트리비아’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것은 바로 그의 이름. 해리라는 이름은 일찍 사망한 그의 모친이 직접 지어준 것인데, 그 이름은 르네상스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로부터 온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슈라는 이름을 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를 본 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는 만화를 그리다가 크게 건강을 해쳐 작년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올해 ‘베르세르크’가 새롭게 연재가 될 예정이라고).

이런 점을 놓고 보면, 작가가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취재를 하고 정말 세심하게 공들여 캐릭터를 갈고 다듬었는지를 알 수 있다. ‘블랙 에코’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 너무 장르의 클리셰에 젖어있다는 지적이나 지나치게 우연을 남발한다는 지적 등이 있긴 하지만(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호평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고) 그 누구도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에 대해선 이견을 내기가 힘들 것이다.

해리 보슈의 원형,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대표작인 3면화,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 그림에 수많은 떡밥(?)이 존재한다

‘블랙 에코’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해리 보슈가 베트남전에서 맡았던 임무처럼 LA 시내 곳곳에 위치한 하수도로부터 은행 금고 지하까지 땅굴을 파서 금고를 터는 범죄자들의 음모를 주인공이 결국 막아낸다는 것. 물론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앞서 이야기한 캐릭터의 디테일은 물론이고 베트남전 막바지의 혼란한 사회상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준비되어 있다.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면 가을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 우리나라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계절은 의외로 여름이라고 한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면서 역시 시원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보는 것만큼의 만족감을 ‘블랙 에코’가 줄 수 있을 것으로 장담한다. 추천!

해리 보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보슈(BOSCH)’도 좋은 평이 많다.
다만 원작 시리즈의 순서가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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