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끄트머리 어디엔가, 몹시 시골스러운 동네에 그야말로 ‘박혀서’ 사는 일가족이 있다. 늙수구레한 가장은 농사도 짓고 씽크대를 짜서 납품하는 일도 한다. 장성한 삼남매는 모두 서울의 직장으로 출퇴근.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삼남매의 출퇴근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것. 모르긴 몰라도 편도로 1시간30분 이상이 걸리는 걸로 보이는데, 실제로 서울 외의 지역에 거주하면서 1시간 내외의 시간을 서울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며 바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이라면 그 출퇴근 자체가 애환이 된다는(그러면서 거기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악물고 이를 극복하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나름의 길을 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와, 막판 의외의 반전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연출한 김석윤 감독이 만난 ‘나의 해방일지’는, 바로 저런 배경에서 시작한다.
고만고만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와중 뜬금없이 터진 문제(?)의 대사가 바로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면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사랑으론 부족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염씨네 셋째 딸 염미정

맹세컨대 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해방일지’에 등장하기 전까지 ‘추앙’이란 단어를 실제로 입 밖에 내본 적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필이면 리얼리티가 뚝뚝 묻어나는 드라마에서 이토록 생경한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온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괜한 기분 탓이겠지만, 처음 미정(김지원)이 구씨(손석구)에게 “날 추앙해요”란 대사를 내뱉을 때까지만 해도 배우가 이 대사(의 앞뒤 정황)를 100% 이해하고서 스스로 체화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 표정과 눈빛에서, 바로 그런 걸 느꼈다.
작가와 연출자가 ‘추앙’이란 단어의 대사화에 명백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 장면 뒤에 이어진다. 구씨는 스마트폰으로 이 단어의 뜻을 검색하기까지 한다! 수도권 과밀화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외피를 매우 두텁게 쓰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이를테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전체 분량(16부작 예정)으로 따지면 이제 겨우 절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생소한 단어가 대사로 쓰인 이유가 무엇일까 따져보는 일은 너무 섣부른 일일 것이다. 다만 미정의 대사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 숱하게 많은 K-드라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용례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사자가 바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잖은가? 사랑으론 부족하다고. 한 번은 채워지고 싶다고. 갈구하진 않겠지만, (그 무엇으로부터든)해방되기를 원하는 절박함. 미정의 바로 그런 심정이 ‘추앙’이란 단어의 기저에 있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추앙의 이유가 그렇다면, 방식은 어떠한가. 바로 이 질문에서, 드라마 진행 절반가량을 통틀어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 그 대답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바로 구씨의 멀리뛰기 장면. 미정이 쓰고 있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 개천 너머에 떨어지자 구씨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닫기를 해서 제법 멀어 보이는 개천 사이를 훌쩍 건너뛴다. 그야말로 훌ㅡ쩍. 그 모습은 마치 허리가 활처럼 (반대 방향으로)휘는 모양새. 평소 상당한 양의 훈련이 없다면 일반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바로 그 모습이, 다른 사람을 ‘사랑’도 아니고 심지어 ‘추앙’하는 바로 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퍼즐이 얼추 맞춰진다.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이제 드라마가 더 진행되면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풀리면, ‘추앙’이란 단어에 얽힌 의미도 밝혀질 것이다(본 글은 5화까지 본 상태에서 작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까진 대사조차 별로 없고 매일 소처럼 일만 하다가 또 매일 술만 마시는 구씨의 전사(前史)가 어떻게 밝혀질지도 궁금하다.
사실,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생각하면 작품 속 특정한 단어나 사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마치 스릴러처럼 진행되던 ‘나의 아저씨’도 지나고 보면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였지 않은가? 모처럼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나게 해준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