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실상부라는 말은 이런 때 쓴다. 바로 지금 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현역 가운데, 차기작이 가장 기대되는 사람을 쭉 세우면 그 중에 맨 앞에서부터 적어도 세 손가락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영화감독이 봉준호 아닐까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작 ‘기생충’ 이후 차기작이 결정되었다. 제목은 ‘미키 7(Mickey 7)’. 우리나라에도 작품이 출간된 바 있는 젊은 작가 에드워드 애쉬튼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은 아직 정식으로 출간되지 않았다는 것. ‘미키 7’처럼 아직 정식 출간 전인 작품이 진작 영화화가 결정된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최근엔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원작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있다(참고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주연에 라이언 고슬링이 캐스팅됐고 현재 프리 프로덕션 작업 중).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소식을 전한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마찬가지로 ‘미키 7’ 또한 진작 주연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 그 이름은 로버트 패틴슨. 최근 맷 리브스 감독의 ‘배트맨’ 예고편이 속속 공개되면서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키고 있는, 새로운 브루스 웨인이 봉준호 감독의 신작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역시 기대!
일부가 공개된 ‘미키 7’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류가 새롭게 추진 중인 식민지 니플하임의 개척을 위해 복제인간을 파견하는데, 험하기 짝이 없는 개척 과정에서 그 복제인간이 크게 손상을 입거나 하면(다른 말로, ‘죽으면’) 그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새 복제인간이 개척 사업에 투입되는 것. 그 과정에서 ‘미처 완전히 손상되지 않은’ 7번째 복제인간, 즉 미키 7이 그의 기억을 간직한 다음 타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이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는 이야기.
복제인간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고뇌한다는 이야기는 오랜 SF의 역사에서 그리 드물지도 않은 편인데, 봉준호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로서만 존재하고 정작 우리는 전혀 새로운 그 어떤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이전의 ‘괴물’이나 ‘설국열차’, 그리고 ‘옥자’ 등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준 SF 세계관에서의 비전을 이번에도 멋지게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