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축구선수 호아킨 산체스(Joaquin Sanchez)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지난 2002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경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스페인과 전후반 90분, 연장전까지 포함한 120분의 경기를 펼쳤으나 스코어는 0:0. 이어서 진행된 승부차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기어코 스페인을 꺾고 준결승에 올랐는데, 그 경기에서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로 나와 승부차기를 실축했던 선수가 바로 호아킨 산체스.
당시만 해도 젊었던 호아킨은 스페인 대표팀의 미래를 짊어질 신성(新星) 소리를 듣는 선수였지만 이렇듯 적지 않은 한국의 축구팬들에겐 약간 억울한(?) 흑역사로 기억되고 있으니 본인으로선 몹시 안타까운 일일 듯.
2002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딛고 절치부심한 호아킨은 이후에 소속팀에서, 그리고 스페인 대표팀에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활약하며 좋은 기록을 쌓았다. 대표적인 예로 1981년생인 그는 올해 마흔 살이 되었는데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스페인 라 리가에서 필드 플레이어로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 기록은 2021년 12월 현재에도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는 중(이지만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ㅠㅠ).
호아킨은 18살 나이에 라 리가의 레알 베티스 B팀에서 프로 데뷔를 했는데, 프로 데뷔 클럽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일례로 2006년 발렌시아 이적이 결정된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난 떠나지만 여전히 베티스의 팬입니다’라고 했다. ㅠㅠ 이런 선수를 어찌 팬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튼 이후 두어 차례 팀 이적을 했는데 지난 2015년, 9년만에 고향과도 같은 레알 베티스로 돌아왔다.
이런 스토리가 있기에 ‘베티코’(레알 베티스 팬의 애칭)들은 호아킨 산체스를 클럽의 레전드로 추앙하고 있는 것. 그런데, 호아킨 산체스가 그렇게 큰 애정을 갖고 있는 클럽 레알 베티스에는 매우 희한한(?) 전통이 하나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홈 경기에서, 하프타임 중 관중들이 경기장에 봉제 인형을 집어 던지는(!) 것. 원래 축구 경기 중 관중이 경기장에 이물질을 던져 넣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이 행사만은 허용이 된다. 이유인 즉, 크리스마스에 불우한 어린이들이 선물 없이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베티스 클럽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통인 것이다.

올해에는 현지 시각 지난 12월13일에 홈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에서 열린 20-21 라 리가 17라운드,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이 행사가 열렸다. 원정팀 레알 소시에다드를 4:1로 기분 좋게 물리친 레알 베티스는 이 경기를 통해 리그 3위로 올라서기도 했는데, 하프타임에 펼쳐진 인형 던지기 행사에선 약 19,000여 개가 넘는 봉제 인형이 수집되어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기부가 될 예정이라고.
연말이 되면서 평소 안 그래도 어려운 이웃들이 더더욱 어려운 나날을 보내게 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가뜩이나 팍팍하고 살기 힘든 때, 우리를 훈훈하게 해주는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