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죽음에 대해서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어리석어지지 않게 되었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외친 이가 있으니, 살아 생전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헝가리의 수학자 에르되시 팔(Erdős Pál). 그가 한 저 말은 실제로 그의 묘비명이 되었다. 어쨌든 그에 의하면 사람은 일생에 한 번 가장 총명한 때가 있고, 그 이후 죽음을 향해 가면서 계속 어리석어지다가 기어코 세상과의 끈을 놓고서야 지적 퇴행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전두환씨가 11월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공식적 사인은 혈액암으로 발표가 되었는데 사실 그 나이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을 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긴 하다. 게다가 비교적 최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하기도 했고. 또한 공교롭게도 그의 사망 날짜는 그에겐 일생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노태우씨의 사망으로부터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날이었고, 33년 전엔 백담사로 떠난 날이기도 했다.

어떤 이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는 부분을 조명하는 게 인지상정인 듯하다. 그런데 그건 그저 평범한 사람일 때의 이야기고, 적어도 천인공노할 학살과 부정부패의 죄를 저지른 자에게도 명복을 빌며 존중을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까? 그렇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아니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

지난 2013년, 마거릿 대처 수상의 사망에
‘마녀가 죽었다(The Bitch is Dead)’라며 환호하는 영국 시민들의 모습.

죽음을 앞두고서 전두환씨가 더 이상 어리석어지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기대가 무너진 날, 마침 남녘 광주의 하늘엔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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