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고 필시 앞으로도 없을 법한 일이 바로 해외 이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인 중에 이민을 떠난 이도 있고 한국으로 온 이도 있어서 그에 관해서 나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긴 하다. 그러면서 알게 된(어쩌면 당연한) 사실은, 해외 이민이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궈낸 모든 삶의 기반과 터전을 하루아침에 새롭게 바꿔야 하는 일이란 것.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란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무척이나 절박한 상태에서 그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경우가 있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칼 든 강도나 다름없는 세무당국의 위협(?)을 피해서 세금이 싼 나라로 이민을 가는 백만장자들’의 경우.
가만, 뭐라고?
며칠 전, 연합뉴스와 뉴시스가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송출했다. 기사의 내용은 최근 급격하게 올라버린 상속세 때문에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민을 가는 한국 부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 기사에선 구체적인 수치까지 거론하는데, 지난 해 한국을 떠난 고액자산가 수는 전년 대비 두 배이고,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규모이며, 심지어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도 많다는 것. 그리고 이 기사를 받아서 복붙하거나 일부를 재가공한(연합뉴스와 뉴시스는 언론사에 기사를 제공하는 ‘뉴스통신사’다) 기사들이 조중동을 비롯한 경제지들에 일제히 실렸다.
그러나 이는 몇 가지 사실관계를 교묘하게 엮어 대중들로 하여금 그릇된 인지와 시각을 갖게 만들기 위한 선전/선동 기사이며, 사실상 가짜뉴스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의 프로파간다. 지난해 많은 관객들이 호평한 넷플릭스 영화 <굿 뉴스>(변성현 감독)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실제 일어난 사실과, 믿으려는 의지, 그리고 약간의 창의력.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거짓도 사실로 만들 수가 있다.
기실 ‘부자들의 한국 탈출’ 어쩌구 하는 한심한 기사에서 근거로 든 데이터부터가 전혀 공신력이 없다는 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기사에서 참조한 데이터는 영국의 한 이민 컨설팅 업체가 제공한 것으로, 그 업체는 뭔가 공공 영역과는 거리가 먼 그저 일개 사기업일 뿐. 사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한국 언론에서 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지난 2023년 12월 ‘한국을 떠나는 백만장자들의 수가 전 세계에서 7번째’란 기사였다. 물론 그 기사에서 다뤄진 데이터 또한 미국의 소규모 독립 매체인 24/7 월스트리트(유명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에서 제공한 것이다.

이번 ‘해프닝’은 시민언론 민들레에서 ‘원점을 저격한’ 기사를 올렸으니,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라.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 해외 탈출한다는 왜곡 뉴스(민들레)
일단 ‘한국을 탈출하는 부자들’을 언급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는 위 기사에서 조목조목 논박을 당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자. 그런데, 실제로 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으나 상속세 및 기타 세금 때문에 해외 이민을 고려하는 경우가 정말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과연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게 좋을까?
우선 ‘상식에 의거해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나라를 염두에 둘 만하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이 나라는 세금이 없고 심심하면(?) 가끔 왕족이 전국민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면세가 되는 경우는 일단 국적자에 한하며, 외국인의 공식적인 이민 절차조차도 없다. 물론 일정 금액 이상 투자를 하면(통상적으로 30억원 내외, 혹은 그 이상) 거주증을 얻고 이를 통해 현지에 거주하며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긴 한데,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생활 환경이 우리의 그것과 비교하면 아주 후하게 쳐줘도 너무 낯설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비교적 생활 환경이 친숙한 아시아권으로의 이민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솔직히 아직까진 은퇴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란 인식이 크긴 하지만 동남아 각국으로의 이민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동남아 이민에서 거의 1순위로 꼽히는 국가가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일단 간단한 수준에서만 확인을 해보면 한국에서의 세금 부과 비율과 비교할 때 다소 낮은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도 최근 들어 물가가 많이 올랐고, 특히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에 있어선 우리나라 못지 않게 높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필리핀이나 태국 등도 있는데 이들 국가는 최근 불거진 치안 문제 때문에 꺼려지고. 한국인들이 여행지로 많이 찾는 베트남의 경우 공식적인 이민 절차도 부재할뿐더러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은 아예 불가능.
‘돈만 많으면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란 것이다. 의도적으로 본질을 흐리면서 교묘하게 사람들을 호도하고 결국 멍텅구리로 만드는 언론이, 과연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