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지난 24-25 시즌, 유럽 모든 국가의 축구 리그 가운데 ‘플레이타임 90분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누구일까? 바이에른 뮌헨의 해리 케인?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의 음바페?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벨기에 프로 리그 소속 헹크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 오현규.
다소 의외의 결과로 들릴 텐데 이건 사실이다. 애초에 오현규는 팀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는 아니고 조커로 교체 출전을 한 경우가 많으며 리그의 전반적인 수준 차이도 고려해야 되겠지만, 뛴 시간 대비 골 결정력이 대단한 수준이었다는 건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올 여름 이적 시장에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큰 리그, 조금 더 큰 클럽의 부름을 받지 않을까 기대하던 차, 현지 시간으로 지난 8월30일 분데스리가의 슈투트가르트가 꽤 높은 금액인 2800만 유로(한국 돈으로 약 455억)의 몸값을 불러 시장이 닫히는 마지막 날 이적이 성사되는가 했더니…!
난데없이 메디컬 테스트 탈락. 즉 이적 무산.
원래 축구에서 메디컬 테스트란 이적 작업이 99.9% 마무리된 후에 갖는 요식행위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돈이 오가는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선수의 몸 상태는, 이적을 원하는 구단이 자체적으로 정보력을 동원하여 파악하기 때문. 물론 이적 성사 직전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올 여름 밀란으로의 이적이 무산된 보니페이스의 경우도 있고 재작년엔 하킴 지예흐가 뜬금없이 알 나스르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기도 했고.
슈투트가르트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메디컬 테스트 탈락 사유는 오현규가 고등학교 시절 부상을 입은 십자인대 문제. 그런데 이게 영 궁색하게 들리는 것은 누가 봐도 직전 시즌까지 문제 없이 잘 뛰기도 했고, 축구 선수로서 십자인대 부상이 드문 건 아니지만 오현규는 수술을 해서 치료한 게 아니라 끊임없는 재활과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한 케이스이기 때문.

그렇다면 슈투트가르트는 왜 이번 이적 건에 ‘파토’를 놓은 것일까? 이에 대해선 이번 소식을 전하고 있는 벨기에의 뉴스 미디어들을 살펴보면 대충 눈치를 챌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슈투트가르트가 애초에 부른 2800만 유로란 금액이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이기도 해서, 일단 ‘어깃장’을 놓은 후 임대로 돌릴 수 있는지도 문의를 했다고 한다. 더불어 벨기에의 뉴스 매체 HBVL은 “(이번 이적은)독일측의 무례함으로 인해 망가졌다”고까지 하고 있을 정도.
슈투트가르트 하면 그래도 유럽에서 빅 4 리그 중 하나인 분데스리가에서도 나름 중상위권 성적을 오랜 기간 유지하면서 유스를 통해서는 안토니오 뤼디거나 사미 케디라 같이 준수한 자원들도 꾸준히 배출했던 클럽 아닌가.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 클럽의 유스 출신들이 실제로 리그에서 활약을 하거나 이름을 날릴 때 소속된 클럽이 어디였는지(물론 슈투트가르트 소속은 아니었다) 확인할 때, 지금 슈투트가르트나 분데스리가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를 비로소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분데스리가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리그와 비교할 때 참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유독 한 팀, 즉 바이에른 뮌헨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그런 경우가 조금 줄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분데스리가에서 제법 뛴다 하는 선수 치고 뮌헨에서 뛰거나, 거쳐가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 그러면서 우승을 독식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팬들의 흥미도 조금씩 떨어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더 심한 문제는 바로 이 바이에른 뮌헨 출신의 ‘시어머니’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당장 작년에만 해도 리그와 챔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김민재를 두고 깎아 내리지 못해 안달이 났던 마테우스를 비롯해서, 울리 회네스나 루메니게 같은 인물들이 강성 팬덤을 업고 클럽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도 그 바닥에선 심각한 수준.
아무튼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오현규 선수는 9월 첫째 주 A매치 주간에 경기를 가질 대표팀에 당당히 선발되어 훈련에 임하고 있다. 모쪼록 오현규 선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휘둘리지 말고 경기에 나와서 특유의 저돌적인 돌파로 멋진 골을 축구 팬들에게 선사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