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는 말이 있다. 레거시라는 단어는 유산(遺産)이란 뜻을 갖고 있으며, 요즘은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나 영향력이 떨어진 지상파 방송, 신문, 라디오 등의 매체를 이렇게 말한다. 저녁 8시~9시 사이, 이른바 프라임타임에 KBS나 MBC 등 지상파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가 제일 공신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그 수나 비율은 줄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참여하고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실제 대한민국 뉴스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 또한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소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해당 리포트의 설문조사 결과, 한국 시민들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비율이 약 72%로 집계되었는데 이 비율은 조사 대상인 46개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어쨌든 상황은 그렇지만, 뉴스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때 시청률(혹은 청취율)을 빼놓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 그렇다고 하면 적어도 TBS(교통방송)의 아침 시사 프로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임을 부인하긴 힘들 것이다. 2021년 3분기에 조사된 ‘김어준의 뉴스공장’ 라디오 청취율은 12.5%로, 이는 현재 대한민국 모든 라디오 방송국의, 모든 장르를 망라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뉴스공장’은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청취율 순위 1위를 지켜왔고, 라디오 프로그램이면서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라디오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또한 특이하다(TBS 라디오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청취가 가능하기 때문이란 점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높은 청취율을 자랑(?)하고 있고, 그런 만큼 영향력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현재 야권 정치인들의 시각은 매우 비우호적이다. 비우호적인 걸 떠나서 아예 프로그램 폐지까지 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심정일 것이 명백하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진행자인 김어준의 정치적 성향 때문. ‘뉴스공장’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굳이 중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하질 않는다.
저널리즘의 역사를 따져보면, 원래 뉴스(정확히는 신문) 자체가 애초부터 정파성을 띠고, 말하자면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혹은 비판하면서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정파 저널리즘(Partisan Journalism)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뉴욕 트리뷴 같은 신문도 시작부터 공화당에 우호적이었으며 선거에서 자기네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아예 다음 날 1면은 “할렐루야!”라고 시작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개인적으론 우리나라도 아예 이런 식으로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뉴스가 더 많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건 그냥 개인적으로 바라는 일이고. 아무튼 그런데, 문제는 진행자 김어준의 바로 그런 정파성 때문에 정말로 ‘뉴스공장’을 기어코 폐지시키고야 말겠다는 야욕(?)을 숨기지도 않고 떠드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
김어준 정치편향 논란 TBS 예산 100억 원 깎는다(링크)
유승민 “TBS, 김어준에 연봉 5억… 100억 원 아닌 예산 전액 삭감해야”(링크)
오세훈 서울시장이 TBS로 들어가는 출연금을 큰 폭으로 깎는다고 한 것은 사실 서울시장 단독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링크의 뉴스에도 나오듯이 서울시의 모든 예산은 서울시의회의 심의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서울시의회 의석 구성상 100억 원 예산 삭감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차기 대통령선거 후보 중 한 명인 유승민 후보도 현재 스코어로 보건대 차기 대통령에 정말로 당선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도 어불성설.
결국 야권의 유력한 두 정치인의 이 발언은 그냥 마타도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면 된다. 근데 진짜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협박하는 거 아닌가 하는 점. 명백한 언론 탄압인데, 불과 몇 개월 전 ‘언론중재법 = 언론탄압법’이라고 외치며 게거품을 물었던 언론인 여러분은 지금 어디서 뭣들 하시는지? 그저 기계적 중립이란 팻말 뒤에 숨어서 이도 저도 아닌 맹탕 뉴스나 되풀이할 생각들 하시나? 전형적으로 ‘강한 자한테 약하고 약한 자한테 강한’ 모습 보이는 동네 강아지 코스프레 하실 참인가?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