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어떤 선수의 ‘몸값’은, 단순한 실력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고려된 결과다. 특히 어떤 선수가 큰 화제의 중심이 되고, 그만큼 많은 팬들을 불러모은다는 것은 상품 가치 측면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부분.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 중인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현대 야구에선 정말 희귀한, 아니, 그 존재 자체가 거의 유일한 투타 겸업 선수인 것도 모자라서, 투수로서 10승, 타자로선 40홈런을 뿜어냈고 MLB 역사상 최초의 만장일치 MVP를 2회나 수상했으니.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매물인 것이다. 2023 시즌으로 원 소속팀인 LA 에인절스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이후의 행선지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는데, 글로벌 기준으로도 유명하고 한국의 MLB 팬들에겐 더욱 친숙한 LA 다저스로 결정된 것. 그의 몸값은? 자그마치 향후 10년간 무려 7억 달러! 우리 돈으로 거의 1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ㄷㄷㄷ
그런데 여기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물론 10년간 7억 달러라는 금액도 보기 드문 건 사실인데, 새 둥지가 된 LA 다저스는 오타니에게 매년 꼬박꼬박 7천만 달러씩 지급을 하는 게 아니라 계약 기간 동안엔 일부만 지급을 하고 나머지 금액은 10년이 지나고서 계속 지급한다는 것. 이를 업계에선 ‘디퍼(Deferred Compensation)’라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이제부터. 그렇담 오타니는 계약 기간 동안은 얼마나 받는데? 못해도 절반, 아니 그래도 한 1/3 정도는 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타니는 계약 기간 중 연봉을 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6억 원이란 푼돈(?)만 받게 된 것. 연봉은 그렇고, 잔여 금액 6억8000만 달러는 계약이 끝나는 2034년부터 2043년까지 받는다고. 게다가 이와 같은 희대의 계약을 선수 장본인이 구단에 먼저 제시했다고 한다.

우선 알아둬야 할 사실 하나. LA 다저스는 MLB 내에서도 부자 구단으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큰 금액인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막대한 연봉을 지급할 의무를 진 구단의 자금 운용에 숨통을 틔워줘서 이를 통해 샐러리 캡을 맞추거나 아니면 더 좋은 선수를 사서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한 번 끼워보길 원하는 선수의 선택인 것인데, 이렇게 되면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 뭔가 짜게 식은 느낌이다.
이와 같은 계약을 두고, 일각에선 선수가 대범하게 양보를 했다느니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한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것이라느니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 중.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계약이라고 생각하고, 자칫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우선 이번 디퍼의 정확한 이유가 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LA 다저스 입장에선 자금 운용에 여유가 생기는 일이기도 한데, 동시에 천문학적인 연봉 지급에 붙게 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인 것도 사실이다. 샐러리 캡을 낮추는 결과도 가져오니 따지고 보면 100% 공정한 페어플레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더불어서 구단의 연고지인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도 세금이 높기로 유명한 동네. 만약 오타니가 LA 다저스와의 계약이 끝나고 미국이든, 일본이든, 아니면 그 어떤 나라든 이사를 해서 산다면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금도 자연스럽게 ‘합법적 회피’가 가능한 것이다.
어쨌거나 프로스포츠 역사상 전대미문의 계약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면 이 계약의 주인공 오타니가 새 구단인 LA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정식으로 뛰는 데뷔전은 참 공교롭게도 서울(!)에서 열린다. MLB 사무국은 2024 정규리그 개막전을 서울에서 연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날 경기(장소는 아마도 고척돔이 될 가능성이 높다) 티켓 구매는 진짜 박 터지는 전쟁이 될 듯하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팬들이 엄청 몰려들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