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보다 더 어이없는 ‘진짜’ 상황

조선의 11대 왕이었던 중종 재위 10년. 당시 열린 과거시험에서 탁월한 식견을 선보이며 장원급제를 하고 공직에 임명되어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했던 이가 바로 조광조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주로 정치 분야에서)지나치게 급진적인 생각은 굳건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마련. 처음엔 조광조를 매우 아꼈던 중종은 그가 너무 이상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판단하고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대신들에게 밀지를 내려 당시 위세를 막 떨치기 시작했던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 세력을 제거하기에 이르니 이것이 사실상 친위 쿠데타나 다름없었던 기묘사화다.

중종 같은 경우 애초에 반정을 통해 집권한 왕이니,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까? 아무튼 기묘사화를 전후로 해서 시중에 유행했던 말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다. 여기에서 ‘주초(走肖)’란 조광조의 성인 조(趙)의 파자(破字)로, 글자를 깨뜨려서 전혀 다른 뜻이나 아니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언어유희. 이에 따르면 주초위왕이란 말의 뜻은 ‘조씨 성을 가진 이가 왕이 된다(혹은 되고자 한다)’는 뜻이 되니, 왕권이 강했던 왕국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이 대역죄가 된다.

당시 경복궁 안에 있던 한 나무에서 주초위왕이라고 새겨진 나뭇잎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기묘사화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트리거로 작용한 셈인데, 당연하게도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뭇잎에 글자 모양대로 꿀을 발라서 벌레가 파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지만(의외의 사실인데, ‘주초위왕’ 에피소드는 실록에도 실려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화라는 사건을 윤색하기 위한 에피소드 정도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가짜뉴스보다 더 어이없는, 현재의 진짜 상황

여기에서 가짜뉴스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흔히 가짜뉴스라고 하면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뉴스를 생산하는 일이 용이해지면서 대중화(?)가 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나름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문체부가 ‘네이버 등의 뉴스포털이 가짜뉴스의 핵심적 유통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오른 이동관(내내 궁금한데, 이럴 거면 인사청문회는 도대체 뭐 하러 하는 건지?)은 가짜뉴스 근절 TF를 꾸려 어떤 형태로든 뉴스를 유통하는 사실상 대부분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할 것임을 천명했다.

물론 가짜뉴스가 끼치는 해악은 매우 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바로 그 가짜뉴스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가장 많이 본 정치 집단이 누구인지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방송통신위 위원장이 가짜뉴스 근절을 외친 날로부터 불과 이틀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날리면’ 해프닝을 보도한 MBC 앞에서 보수 유튜버 등을 동원해서 관제데모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통화 녹취가 공개된 터다.

말이 좋아 가짜뉴스 근절이지, 까놓고 말해서 ‘내 맘에 안 들면 가짜뉴스’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고 입을 틀어막는가 하면 현재 여당 세력의 입장만 대변하는 보수 진영 스피커들을 동원해서 더 큰 공세를 펼치고자 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런 자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자유를 외치고 공정을 외치고 상식을 외치니, 듣고 있는 내 귀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