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6월, 현재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영토지만 당시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그대로 인류 역사의 크나큰 비극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 약 1천500만 명이 사망했고 2천700만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유럽 각국은 무시무시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낙원으로 이끌 것’이라던 믿음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쟁의 와중, 그나마 1백여 년 전이니까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해프닝(?)이 1914년 12월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벌어졌다.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의 국적과 민족 구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오랜 기간 기독교 문화의 큰 영향권에 있던 영국과 독일 등 국가의 병사들에겐 공통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연중 큰 휴일이었던 것. 열악한 환경에서 병사들이 조촐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파티를 열며 캐럴을 부르는 소리가 참호를 건너 전해지며, 불과 얼마 전까지도 총탄을 주고받던 병사들이 참호를 나와 서로 반가운 악수를 나누는 이른바 ‘크리스마스 휴전’이 기적처럼 일어난 갓이다.
어딘가의 전선에선 아예 영국군과 독일군이 팀을 나눠 축구 경기를 펼쳤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 아무튼 앞서 ‘옛날이니까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 이유는, 바로 2022년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니까 잠시나마 전쟁을 멈춥시다’라고 이야기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보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2년차로 접어들 무렵의 2022년 크리스마스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혔다. 이 트리는 우크라이나의 상징인 파란색과 노란색,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장(國章)인 삼지창으로 장식이 되었다는 점 외에도 특이한 부분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디젤발전기를 통해 불을 켠다는 것.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러시아의 폭격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사회 기반시설 상당부분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집에서 추운 겨울을 나면서도 굳이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힌 것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2년의 인류는, 1백여 년 전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가? 우울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2022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