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하나.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0년대를 전후로 해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 순위의 상위권에는 이란이 이름을 올렸다(지금의 시각으론 좀 의외?). 당시만 해도 이란은 많은 석유를 생산했고 이를 서방 국가들에 판매해 막대한 부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특히 미국과도 꽤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역시 지금의 시각으론 무지하게 의외), 어느 정도였는고 하니 1970년대 당시만 해도 최첨단 무기였던 F-14를 미국이 이란에 팔았을 정도(그랬던 F-14는 50년이 지나서 한 영화에 출연해서 아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ㅠㅠ). 자연스럽게 한국과도 관계가 좋아져서 당시 막 개발 붐이 일던 강남의 한 길거리 이름이 ‘테헤란로’가 되기도.
당시 테헤란에서 시민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했으며 여성들 사이에선 미니스커트와 판탈롱 스타일과 글래머러스 룩 같은 첨단의 패션이 유행했다. 그런 한편으론 물가가 상승하고 부의 편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도 늘어났다. 그런 데다 오랜 기간의 왕정 독재로 인한 시민들의 피로감도 상승하며 반 팔라비 왕조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 모하메드 레자 팔라비 국왕이 이집트로 망명을 하며 페르시아 제국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것이 1979년 2월의 이른바 이란 혁명. 이 혁명을 통해 집권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이면서 극단적 원리주의자.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란의 모습 대부분을 사실상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장면 둘.
탄탄한 체격과 뛰어난 개인기를 갖추고서 현역 시절이었던 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해서 국가대표팀 부동의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한국의 골치를 꽤나 썩힌 선수, 바로 알리 카리미. 그에겐 다소 특이한(?) 사회적 식견이 있었는데, 바로 이란의 축구 경기장에 여성 관중도 입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이란 혁명 이후, 이란 사회는 극도의 보수주의로 치달으며 여성들에겐 매우 차별적인 대우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축구 경기장에 여성은 입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고 보면 한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지역 예선 등의 이유로 종종 이란 아자디 스타디움을 찾아서 10만 명에 가까운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많은 관중들 중에 여성은 한 명도 없다는 게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일이라고 느낀 적도 있다.

올해 22살 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강제 구금된 이후, 의문사한 사체로 발견된 것이 지난 9월16일. 그리고 이 상황이 알려지면서 이란 전역이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로 들끓고 있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하고 있는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번 시위가 격해지면서 경찰의 강경 진압도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50명 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한 한편 수백 명에 달하는 시민과 언론인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란에서 이와 같은 규모의 반정부 시위는 지난 2009년에 있었던 부정선거 의혹을 규탄하며 벌어진 이른바 ‘녹색 운동’ 이후 13년만에 최대 규모라고 하며, 이란 전역의 크고 작은 80여 개 도시로 계속 번지고 있는 실정이라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이야기한 이란 축구의 레전드, 알리 카리미가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한편으로, 은퇴한 선수 말고(카리미는 2013년에 은퇴를 하고 현재는 대표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현역’ 축구 스타인 사르다르 아즈문 또한 마찬가지로 SNS로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고, 이 넓은 세상 그 어딘가에 있는 문화권에선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건 그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데, 우리 한 번 생각해보자. 도대체 세상의 그 어떤 이유가 그리도 숭고하고 절대적이길래, ‘특정 성별의 사람이 특정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면서 경찰에 체포 당하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인가? 사람의 목숨만큼 귀중한 종교가, 교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누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그 나라나,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