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마지막 모습

지난 1952년, 그러니까 한국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던 시절에 불과 25살 나이에 즉위한 이후 무려 70년간 재위를 한 영연방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현지 시간으로 9월8일 사망했다. 향년 96세. 이 정도 나이니 굳이 사인을 살펴보고 할 필요는 따로 없을 듯. 참고로 70년이 넘는 재위 기간은 유럽 군주 가운데에선 루이 14세(72년간 재위 ㄷㄷㄷ) 다음의 기록이고 여왕 중에선 당연히 세계 최장의 기록이다.

어쨌든 군주가 사망을 했으니 누군가는 그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그의 뒤를 이어 영연방의 왕위에 오르게 될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지구상에 거의 없을 듯. 그도 그럴 것이 무려 70년간 왕세자 노릇을 했던 찰스(‘왕세자’라는 호칭이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왕세자가 아니다) 3세. 비로소 공식 직함(?)을 받게 된 그의 풀네임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이며, 영국 윈저 왕조의 제5대 국왕 되시겠다.

영국, 나아가서 영연방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은 어디까지나 총리이다. 항간에는 영국/영연방의 모든 정치적 결정권은 왕실이 행사하고 총리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결코 그렇진 않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위기간도 엄청 길었고 왕국 국민들의 신뢰도 나름 얻은 부분 등으로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매우 큰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왕실은 왕실이고 정치는 정치. 아무튼 ‘생긴 것 만큼이나’ 희한하고도 웃기는 행보를 보이며 좌충우돌하다가 얼마 전 사퇴한 존슨 총리의 뒤를 이어 불과 일주일 전 총리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 트러스(공교롭게도 이름이 같다) 총리는 부임 직후부터 조문 외교의 일선에 나서게 생겼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육군 장교로 근무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당연하지만 당시는 즉위 전)

이제는 고인이 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두고 공과를 논하면서 ‘그다지 잘 한 게 없다’거나 심지어 ‘진작 죽어 마땅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도 식민지로서 피지배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고,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영국/영연방이 행했던 잔혹한 수탈의 역사, 그리고 그 뒤에 버티고 있었던 영국 왕실의 존재를 완전히 잊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앞선 내용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면, 영국 아니라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최고 통수권자(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그 어떤 쪽이든)로 70년이 넘도록 지내면서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것이다.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지낸 기간이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역시 얼마 전 타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재임 시절 친서방 행보를 보이며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러시아 내에선 ‘나라를 팔아먹은 XX놈’이란 인식이 있잖은가.

어쨌든 세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며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한 사람이 결국 지고 말았다. 시간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헛헛한 생각이 드는 추석 연휴의 첫 날이다.

버킹엄 궁에서 신임 리즈 트러스 총리를 맞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 모습은 그의 마지막 공식 석상에서의 모습이 되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