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의 일갈(一喝)을 2021년에 해석하는 방법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Lucie Ernestine Marie Bertrand de Beauvoir). 철학자이면서 문필가이기도 했으며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준 그녀가 후대에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도 이것일 터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앞으로는 다르게 번역이 되어 독자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Lucie Ernestine Marie Bertrand de Beauvoir)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말하자면 ‘성인지 감수성’의 기준에 입각한 번역이란 것.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저 유명한 말이 실린 저작인 ‘제2의 성’을 무려 48년 전인 1973년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한 을유문화사는 지난 9월10일 개정판을 내면서 위처럼 표현을 바꾸었다. 이번 개정판을 번역한 이는 파리 제4대학에서 보부아르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은 이정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사. 그에 따르면 “‘만들어진다’는 표현은 여성의 수동성이 부각된 것으로, 여성에게 자율성이 없으면 여성해방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표현을 ‘되는 것이다’로 바로잡았다”고 한다.

박사학위 ‘씩이나’ 받은 분이 하는 말이니 수긍해야 되겠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표현이 여성을 주체에서 객체로, 다소간 격하시키는 표현이란 것은 당연하지만 여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혹은 사람?)은 여자를 제외한 남자, 그리고 남성 위주의 사회라는 것을 부연설명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바로 그러면서 이 사회에서 여성이 입고 있는 피해와 차별을 극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경구로 해석하면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꼴페미 운운하면서 위와 같은 움직임을 백안시하고 까대기 바쁜 이들도, 그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고 있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여자로 만들어진다’ 대신 ‘여자가 된다’는 표현은 여자만 쓸 수 있는(여자만 써야 마땅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위주의 이 사회에서 여자가 ‘되면서’ 겪게 되는 모든 불합리함(으로 느껴지는)은 여자가 ‘되었으니’ 몸소 느끼는 것. 말하자면 ‘여자가 된다’는 표현이 PC(Political Correctness)질, 혹은 페미질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저 표현이란 그저 생물학적 선택에 의한 결과 이상이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어떤 입장을 갖고 있든 너무 곤두서서 눈에 쌍심지 켜고 어떻게든 꼬투리 잡을 생각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미 한 세기를 풍미한 철학자가 자신이 한 말을 두고 후세들이 이렇게 드잡이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본다면, 그 얼마나 머쓱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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