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다시 만난 노래, ‘다시 만난 세계’

집회나 시위라고 하면, 사뭇 비장한 공기가 현장을 가득 채우는 일이 많았다. 머리띠를 두른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서 ‘팔뚝질’과 함께 이런저런 구호를 외치면, 현장에 모인 여러 사람들이 그 구호를 따라 외치는 모습. 그리고 전투적인 리듬과 가사의 민중가요도 빼놓을 수 없는 현장의 요소였고.

약 20년 전까지의 집회나 시위가 그랬다면, 4~5년 전 얼마간 열렸던 촛불문화제를 통해서 현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가 싶더니 이제 급기야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문제(?)의 노래는, 다름 아니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사실 ‘다만세’가 집회 현장에서 처음 불려진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지난 2016년, 이화여대가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라이프대학’이라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이름의 성인 대상 단과대학 신설을 졸속 추진하자 일단의 학생들이 이를 규탄하는 시위와 학교본부 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맞섰던 학생들이 손에 손을 잡고 불렀던 노래가 바로 ‘다만세’이고, 현장의 모습은 누군가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통해 인터넷에 올라왔다.

‘다만세’로 하나가 된 이화여대생들의 결기가, 박근혜로부터 최순실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급기야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직접)불러일으켰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에 반대되는 의견도 존재한다(이 부분을 직접 조명하기 위해선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당시 공통의 목적과 이상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함께 목놓아 부른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고, ‘아침이슬’이 아니라, ‘다만세’였다는 점일 것이다.

2022년, ‘개딸’들이 다시 부른 ‘다시 만난 세계’

그리고, 2022년이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0.73% 차이로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난데없이 생겨버린(?) ‘개딸’들이 선거 이후 민주당사 앞에 모여 민주당의 개혁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도중 ‘다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다만세’를 유심히 들어보면(그리고 따라서 불러보다 보면) 그 가사가 은근히 나름의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형처럼 예쁜 소녀들이 돌아가면서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말라고 하거나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쫓아”가면서 급기야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자”고 외치는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다만세’가 21세기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침이슬’이 될 수 있을까? 혹시 이미 된 것일 것일까? 이에 대해선 그렇다, 혹은 아니다 하는 식으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너무 섣부른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다만세’가 울려 퍼지는 집회 현장에 모인 이들이 지향하고 끝내 가고자 하는 지점에 대다수 시민들이 공감을 하는지 여부가 중요할 것이다(이것은 당위의 문제는 아니고 사실의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아침이슬’을 지은 김민기씨도 “(아침이슬에)그렇게까지 심오한 뜻을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이젠 데뷔 시절을 생각하면 그때 맏언니나 적어도 이모뻘 나이는 된 1세대 대표 아이돌 소녀시대의 데뷔곡(!)이 누군가의 어마어마한 투쟁 동력이 되었다는 것일 터. 게다가 그 투쟁의 방향은 무려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노래, ‘다시 만난 세계’는, 그리고 거리에서 더없이 밝은 표정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젊은 / 어린 소녀들의 얼굴은 중년의 아재에게 가슴 찡한 감정과 깊은 울림을 전한다.

2022년의 ‘다만세’는 아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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