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은 무엇일까

전쟁을 학문의 영역에서 조명하는 데에 큰 공이 있는 유명한 군사학의 대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프로이센, 1780 ~ 1831)는 자신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의 3요소로 정치성(정부), 개연성(군인), 폭력성(민중의 의지)을 각각 들었다. 그리고 이 3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러면서 전쟁을 계량적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어쨌든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세력과 세력이 맞붙는 전쟁에서 상황과 경우에 따라 어느 한두 부분 정도는 유독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전력의 요소는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라면 전쟁에선 당연히 우수한 장비, 충실하게 훈련된 병사들의 전투력과 투쟁심, 원활한 보급 등이 바로 그렇게 승리를 보장하는 요소들일 테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전쟁에선 어떤 전력 요소가 중요할까? 위에 언급한 내용 외에 또 필요한 전력 요소는 무엇일까? 누가 만약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짤막한 한 마디로 답변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해킹 그룹 ‘어나니머스’에 의해 해킹된 러시아 국영 뉴스 ‘폰탄카’ 홈페이지

위의 이미지는 러시아 국영 뉴스 사이트인 ‘폰탄카’의 홈페이지를 캡처한 것으로, 철저하게 익명으로 활동하는 해킹 그룹 ‘어나니머스’에 의해 해킹이 된 상태. 이미지 속 러시아어는 다음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경애하는 시민 여러분. 우리는 당신들이 이 광기를 멈추기를 촉구한다. 당신의 아들과 남편들을 죽음으로 보내지 말라. 푸틴은 우리를 거짓말하게 하고 위험에 빠뜨린다. 이 메시지는 삭제될 것이며, 우리들 중 일부는 해고되거나 심지어 감옥에 갇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러시아 국기 이미지 위의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4일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5,300명이 사망했다. 이 숫자는 제1차 체첸 전쟁(1994~1996) 당시보다 더 많은 숫자다’

다만 위 내용에서 러시아군의 사망 수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는 아니다. 젊은 군인들이, 심지어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이 실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방구석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해킹이나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세대나 성별을 떠나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단말기를 하루 중 얼마나 오랜 시간 접하는지를 생각하면 해킹을 통한 이와 같은 메시지 전달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에서 인터넷에 대한 원활한 접속이 힘들어지자 우크라이나의 미하일로 페도르프 부총리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론 머스크(!)에게 SOS를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 내용은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인공위성 기반 인터넷 네트워크인 ‘스타링크’의 사용을 요청한 것인데 이와 같은 일이 알려지자마자 불과 10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역에 스타링크가 말 그대로 ‘깔렸다.’ 하는 짓이 하도 같잖아서 일론 머스크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도 몇 없을 것 같은데, 이럴 땐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첨부한 이미지를 보면 페도르프 부총리란 양반도 이 전쟁통에 나름 위트(?)를 부린 것을 알 수가 있다. ‘일론 머스크씨, 당신이 화성을 식민화하려고 노력하는 와중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식민화하려고 한다오! 당신의 로켓이 성공적으로 발사된 와중 러시아의 로켓은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을 공격한다오!’라니. 웃을 일은 아니지만 ㅋㅋㅋ

현대전에서 온라인을 통한 공격과 방어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주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의 정부 기관 네트워크가 해킹 공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 여러 가지 타당한 정황과 함께 –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곳이 다른 곳도 아닌 바로 러시아(의 정보기관 정찰총국 GRU 산하의 해킹 전담 그룹)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전쟁 중인 국가의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벌이고 있는, ‘소리 없는 전쟁’ 외에도 민간 차원에서 주로 SNS 공간을 통해 활발하게 전파하는 전쟁에 관한 각종 정보는 물론 사실상의 심리전 차원의 전술로도 볼 수 있는 가짜뉴스 등도 ‘21세기의 전쟁에선 최전선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참 격세지감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이 땅에서 다시는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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