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慰問)의 정치학: 누가, 무엇으로 위로 받는가

찾아가서 위로하다. 위문(慰問)이란 말의 뜻이다. 조금 더 풀어보면, 누군가 위로를 받을 만한 사람에게 따스한 말을 전하며 힘을 북돋는 정도의 상황이 될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그렇고, 적어도 지금 청년 이상의 세대에게 이 단어가 가장 찰지게(올바른 맞춤법으론 ‘차지게’가 맞지만, 그렇게 하면 ‘찰지지가 않다’. 그래서 ‘찰지게’라고 쓴다) 입에 달라붙는 경우는 누가 뭐래도 그 뒤에 편지라는 단어가 붙는 경우일 것이다. 즉, 위문편지.

따지고 보면 그 위문편지를 받는 군인 ‘아저씨’들과 비교하면 나이 차이가 불과 열 살 정도도 나지 않았을 중학생 무렵까지도 김PD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위문편지를 썼다. 받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받는 쪽에서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이 희한한 편지가 2022년까지도 누군가에 의해 의무적으로(혹은 반강제로) 강요되어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불과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매우 안타까운 뉴스를 통해서. 지난 1월 둘째 주 정도에 인터넷의 많은 게시판에서 이슈가 된 이른바 ‘진명여고 위문편지’ 소식이 그것. 서울 목동에 소재한 진명여고에서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문편지를 보내는 행사가 있었는데(행사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 점수가 주어졌다고) 이 편지 가운데 일부가, 군인과 군대, 군 복무 자체를 심하게 모욕하는 내용이 담겨있던 것.

이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측면에서 참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일단 아직도 군인에 대한 비하와 모욕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는 점과,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반강제적인)위문편지 쓰기 행사 같은 걸 하는지, 바로 그 점.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현재는 군인도 일과시간 외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가 있게 된 것이 이제 3년차에 접어든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진명여고 위문편지 소동이 이슈가 된 것도 현역 군인이 스마트폰으로 편지 내용을 촬영한 사진이 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받는 대상도 보내는 대상도 서로 누군지 모르는 편지 따위가 군 복무 기간 중에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이 된다고 이런 시대착오적인 행사가 아직도 기획되고, 시행되는지 정말 아연할 따름이다. 까놓고 말해서 이 위문편지 쓰기 행사란 거, 사실상 강제로 시키는 사람만 흐뭇해하는 행사 아닌가? 솔직히 말해보라고 해볼까?

당연하지만 부적절한 내용의 편지를 굳이 써낸 철딱서니 없는 고딩들한테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지. 징병제가 엄존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는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의 가족이다’라는 말의 무게를 느낄 만큼의 인성과 감성을, 주민등록증도 나오고 선거권/피선거권 모두 있는 성년의 나이에 이르도록 갖추지 못했단 것이 참담하다는 말이다.

군대에 잠깐이라도 몸을 담은 적이 있는 이라면, 군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전투력 강화와 사기 진작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군인이 가장 군인답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체계적인 훈련과 교육을 통한 육체와 정신의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적절한 휴식일 것이다. 쓰나마나하고 보나마나한 위문편지 따위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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