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 UN 산하에는 UNESCO, 유네스코란 이름의 전문 기구가 존재한다. 굳이 우리 말로 풀어보자면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전세계적으로 교육과 문화, 과학 등을 보급하고 국가간 교류를 위해서 지난 1945년에 설립되었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데, 여기에서 하는 일 중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일이자 가장 큰 사업이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을 선정하는 것. 참고로 내년 7월 유네스코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한다.
그런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은, 특정한 건축물 같은 역사적 유적이나 터, 혹은 자연 경관 자체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가졌는지 여부가 선정 기준이 되며 그 외에도 보존 계획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 유산이 현재에도 충분히 남아있는지 등 부차적인 기준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선 지난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합천 해인사의 장경판전, 그리고 종묘가 최초로 등재되었는데, 이 가운데 종묘는 유독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석굴암이나 불국사, 팔만대장경 같은 경우는 (수학여행 때 실제 가서 보긴 했지만)뭔가 국사 시간에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나 본, 아주 옛날의 비싼 물건(?) 같은 느낌이라면 종묘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철 타고 훌쩍 가서 거닐면서 멋진 구경을 할 수 있는 명소이자 ‘핫 플레이스’란 느낌이지 않은가.
최근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서, 종로구의 세운4지구 재정비촉진지구(재개발지구) 내 건축 가능한 건물의 높이를 이전 종로변 55미터에서 101미터, 청계천변 71.9미터에서 145미터로 상향 고지하는 일이 있었다. 말하자면 재개발을 더 화끈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세운4지구 인근에 종묘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종묘의 경관을 크게 해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얼마 전 인천 검단에서 있었던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 논란을 떠올리면서 ‘이번엔 종묘뷰 아파트 나오나’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 첫 문제제기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나왔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과 종묘를 직접 찾아 답사를 하면서 “종묘는 서울시의 일방적 결정으로 훼손할 수 없는 국가적 자산”이라면서 “(개발에 있어)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역의 낡은 건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온당치 않으며, 오히려 종묘 인근을 개발해야 종묘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오세훈 시장은 해당 사안에 대해 국무총리와 1:1 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했는데, 솔직히 이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인 체급을 키워보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다고 본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개발이냐 vs 보존이냐’의 차원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정치 싸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선택이든 무수히 많은 표가 움직일 것이 뻔하기 때문.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같은 경우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에서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뜨거운 감자’ 윤석열을 중간에 두고 입장 정리를 확실히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진 꼴이어서 내심 자신이 야권의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꿈을 꾸는 모양새란 건 누가 봐도 명백하다.
다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단순하기만 한 상황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려운 구석도 있다. 정치적 입장 차이와 함께 인근 상권의 활성화 문제에 있어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 나아가선 특정 지역의 개발 문제에 관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 책임과 권한에 대한 공방까지도 벌어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니.
자, 종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