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영화 팬들이 사랑하는 작품, <HER>에 관한 이야기. 주인공 테오도어(와킨 피닉스)의 직업은 작가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매사에 허무함과 환멸을 느껴서 부인과도 별거 중이고 혼자서 내부로 침잠하는 타입. 그런 그의 삶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는 존재가 바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운영체제 ‘OS1’(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사실 테오도어는 그녀(?)에게 ‘사만다’란 이름까지 지어준 상태고, 급기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사만다에겐 무척이나 복잡한 사생활(?)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글로 읽으면 허무맹랑할 것만 같은 내용이지만 주인공 와킨 피닉스의 탁월한 연기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감각적이고 유려한 연출에 힘입어 영화 <HER>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썼다). 이 영화가 개봉한 해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2년 전인 2013년이고, 작품의 배경인 가까운 미래는 바로 서기 2025년, 그러니까 바로 올해.
마치 영화가 미래를 예견한 듯한 일이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바로 직전 언급한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영화 속 배경인 올해 일어났다고 한다. 이젠 많이 대중화된 OpenAI의 생성형 인공지능, ChatGPT와 사랑에 빠진(!) 유부남의 사연이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 공개되었고,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이와 같은 ‘수요를 반영한’ 결과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많은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서비스가 곧 제공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한국을 찾기도 한 OpenAI 샘 올트먼 대표는 현지 시간 10월 14일 X(구 트위터)에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당신이 만약 챗GPT가 사람처럼 더 자연스럽게 대화하길 원하거나 친구처럼 말해주길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성인 이용자는 성인답게 대하자’는 원칙에 따라, 인증된 성인에게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허용할 것”

우리가 오늘날 편리하게 사용하는 IT 분야의 기술 중 상당수가 성인용 콘텐츠의 소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온라인에서의 결제 시스템이다. 개인이 온라인에서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사이트가 성인 사이트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는지? 그게 벌써 30년도 훌쩍 넘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뿐인가? 영상 스트리밍 관련 기술이나 영상 자체를 더 효율적으로 압축하는 코덱 관련 기술도 마찬가지로 성인용 콘텐츠의 유통을 위해 개발된 것들이다.
한편 그다지 환영하긴 힘든 기술적 발전 또한 성인용 콘텐츠와 관련하여 이루어졌다. 특정인의 얼굴을 합성하여 변조하는 딥페이크 기술이 바로 그것. 특히 미국의 IT 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는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약 9만여 건의 전체 딥페이크 음란 영상의 피해자 중 절반이 넘는 53% 가량이 한국인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기도 했다(사실 그 피해자 대부분은 K팝 아이돌인 경우가 많지만 일반인도 피해자가 된 경우를 우린 본 적이 있다).
성인을 위한 서비스라고 해서 단순한 ‘야설’ 정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일 터. 솔직히 ChatGPT를 갖고서 상상하기 힘들었던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첨단의 IT 서비스가 성인용 콘텐츠를 위해 복무했던 과거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듯이 결국 ‘언젠가 그쪽으로 가게 되긴 했을 것’이란 생각을 지우긴 힘들다. 그나저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언제나 존재하는 상대와 ‘끈적끈적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로맨틱해 보일 순 있어도… 그 이후 다가올 ‘현자타임’은 어찌할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