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그야말로 온 세상이 K-콘텐츠의 매력에 홀려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흥하고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한국 태생의 작품이거나, 한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작품이기 때문. 독보적 1위의 지위를 가진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명실상부 최고 히트작 시리즈인 <오징어게임>의 새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이 얼마 전 공개되어 ‘예상대로 잘 나가고’ 있는 중.
그리고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도 연일 큰 화제를 낳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케이팝 아이돌 걸그룹이 사실 악귀를 물리치는 헌터(!)였다는 내용만 들으면, 참 뭐라 말하기 힘든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워낙 뛰어나고 풍성한 작화, 작품 속 다양한 디테일, 그리고 무엇보다 귀에 쏙쏙 박히는 OST들로 인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덧붙여서 <케데헌>의 OST들이 별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사실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작품 속 수록곡들인 ‘Golden’과 ‘Your Idol’, ‘How it’s done’ 등을 포함, 도합 7곡이 빌보드 HOT 10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나아가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선 ‘Your Idol’이 미국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케이팝 아이돌 그룹(비록 가상의 그룹이자, 이미 저세상의 존재들인 ㅠㅠ)으로선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BTS도 오르지 못했던 고지에 ‘사자 보이즈’가 기어코 올랐다는 뜻이다(참고로 BTS의 스포티파이 미국 차트 최고의 기록은 ‘다이너마이트’로 올랐던 3위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두 작품은 장르도, 분위기도, 주제의식도 모두 다르다. 두 작품 모두에 이병헌 배우가 출연했다는(ㅋㅋㅋ) 점을 제외하고 혹시 다른 공통점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오징어게임 3>와 <케데헌>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산 작품이거나, 한국 고유의 문화를 듬뿍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두 작품은 한국에서 유독 심하게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독특하다. (아주 조금)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 사회와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
<오징어게임> 시리즈야 말할 필요도 없다. 액수가 얼마가 되었든, 돈을 걸고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죽음의 게임이 펼쳐진다는 점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케데헌>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수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역시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케이팝 산업의 이면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공정한 계약을 통한 착취, 지나치게 어린 아이돌에 대한 상품화,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구조의 답습 같은 문제들이 있고 그들 중 <케데헌>은 아이돌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과 맹목적인 팬덤의 추종 같은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물론 오랜 기간 켜켜이 쌓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게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손에 꼽힐 만큼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한 뒤안길에 여러 가지 문제를 낳은 것은 주지의 사실. 따지고 보면 바로 지금 <오징어게임 3>와 <케데헌>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 전술한 문제들이 유독 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아니면, 적어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떤 시도를 할까? 일단 <오징어게임 3>의 주인공 기훈은, 스스로 ‘장기판의 말(馬)’이 되기를 거부한다(가장 큰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일단 요렇게만 쓴다. ^^;;). <케데헌>의 루미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고 비밀을 밝히며, 진우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던진다’(!).
말하자면 일정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드라마가 되었건 영화가 되었건 일정한 구조를 갖춘 서사의 주인공이라면 그런 극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 되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나름 ‘극적으로 돋보인’ 순간이 있었으니, 그런 모습을 우린 지난 겨울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서초동에서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빛 속에서’ 우린 가장 큰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된 것이다! 게다가 <오징어게임 3>의 기훈이나 <케데헌>의 루미, 진우가 외로움 속에서 고민 끝에 특정한 선택을 한 것과 달리 우리는 서로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연대를 하지 않았던가! 굳이 부연하면,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기간에 자본주의를 성장시킨 만큼, 민주주의도 성장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금 다시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이 됐다. 대한민국을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키려 했던 전직 대통령을, 순전히 민주주의의 힘으로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다시 구속시켰다. 이만큼 빛나는 민주주의의 성과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만하다. ‘국뽕’은 이럴 때 만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