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쓴 짤막 리뷰가 있다(링크). 글을 쓸 때만 해도 고령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이 나빠져서 ‘조만간 실제 콘클라베가 열릴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생전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셨던 전임 교황의 명복을 빈다. 그는 분명 하늘나라에서도 환영을 받았으리라.
그리고 오늘의 글은 실제로 진행된 콘클라베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그 이면을 둘러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위주로 쓰고자 한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콘클라베가 열렸고,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교황명은 ‘레오 14세’)되었다. 따로 후보를 미리 선출하지 않고 현장에 참석한 1백명이 넘는 모든 추기경들이 후보가 되어 2/3 이상 표를 얻어야 하는 콘클라베의 특성상, 며칠이고 몇 주고 이어졌던 과거의 사례와 달리 이번엔 불과 이틀 만에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콘클라베를 마친 추기경들이 성 시스티나 성당 발코니에 모여 하나같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교황으로서의 막중한 임무를 스스로 지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혹은 이제 칠순도 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젊은’ 레오 14세에게 ‘짬처리’를 시키게 되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이게 또 전혀 사실무근은 아니란 점도 웃긴다. ㅋㅋㅋ 다만 한 가지 덧붙이면 이번 콘클라베에 레오 14세보다 젊은 추기경이 참가하긴 했다).

이런 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실제 콘클라베는 영화 <콘클라베>에서 그려진 것처럼 막후에서 벌어지는 뭔가 대단히 음험한 정치적 암투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실제 콘클라베에 참여했던 한국인인 유흥식 추기경의 전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영화 <콘클라베>에선 교황 선출 과정이 대단한 투쟁처럼 묘사되고 정치적 야합이 이뤄지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콘클라베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 성직자로서 이를 솔직하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들이 함박웃음을 지은 일에 대해서도 “현장이 워낙 잔치, 축제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참 희한하게도 이번에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도, 그리고 현장의 유일한 한국인 유흥식 추기경도, 그 외에 꽤 많은 추기경들이 실제 영화 <콘클라베>를 관람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이전에도 경찰이나, 의사나, 법조인 같은 특정 직업군의 사람들이 해당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품평을 하는 경우를 보긴 했는데, 성직자라는, 그야말로 특수한 직업(게다가 전세계 수억 명의 가톨릭 신자 중 불과 1백여 명에 불과한 추기경들이) 하필이면 자신들이 이제부터 하게 될 일을 정면으로 그린 영화를 봤다는 게 참 희한하다.
게다가 영화 <콘클라베>는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인 로버트 해리스부터 시작해서 영화 연출을 맡은 에드워드 버거 감독까지도 작품 속 고증에 무척 신경을 써서 엄청난 디테일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도 이미 유명하기에 흥미가 더해진다.

한편, 전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로부터도 추앙의 대상인 교황의 인간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축구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라틴아메리카의 기질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축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가, 펠레인가요 아님 마라도나인가요?”라고 주변에 물어봤다는 이야기(당연하지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신경 써서 해야 한다. ㅋㅋㅋ).
레오 14세 교황은 앞서 언급했듯 미국 출신이다. 미국인들은 또 야구라면 죽고 못 살지. 게다가 그는 시카고 출신인데, 공교롭게도 시카고를 연고로 두고 있는 MLB 구단은 두 개. 바로 컵스와 화이트삭스. 당연히 두 구단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번에 교황이 선출되자 컵스는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 바깥에 대문짝만하게 ‘교황은 컵스 팬이다!’라고 써 붙였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교황의 친형은 인터뷰에서 밝히길 “교황님은 컵스 팬이었던 적이 없고, 삭스 팬이었다”고 한 것. 그리고 이에 따라(?) 화이트삭스는 홈구장 레이트 필드 바깥에 대문짝만하게 ‘교황은 삭스 팬이다!’라고 써 붙였다.
마지막으로 붙이는 이야기. <콘클라베>에선 교황을 선출하는 내용을 다뤘는데, 교황을 직접 선출하는 건 아니고 5백여년만에 생전 양위를 한(교황은 원래 종신직이다) 전전의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를 다룬 <두 교황>을 추천하고자 한다.

영화로선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데 원작은 연극. <두 교황>을 보면, 베네딕토 16세가 왜 생전 양위를 하게 되었는지(실제 이야기에 약간의 허구를 섞어서)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가며 어떤 생각을 나눴는지도 알 수가 있는데 역시나 영화인 만큼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가 보강되었음을 염두에 두면서 봐야 할 것이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을 정도로 긴 편인데, 지루한 구석이 별로 없고 무척 재미있으니 꼭 보시라.
덧붙이면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으로 안소니 홉킨스, 프란치스코 교황 역으로 조너선 프라이스가 각각 출연하는데 그들의 외모가 실제 모습과 무척이나 흡사한 점이 또 큰 재미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너선 프라이스는 하필이면 <왕좌의 게임>에서 사이비 교주(참새들의 왕 ㅋㅋㅋ) 역으로 나왔던 점이 겹쳐서 개인적으로 참 웃기기도 했고. <두 교황>의 연출을 맡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대표작이 <시티 오브 갓>. 이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연출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