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잡으러 떠난 동해바다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작년 6월, 대한민국 시민들은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구치소에서 썩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어쨌든 현재까지는)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경북 포항시 영일만 일대에 석유 및 천연가스가 최대 140억 배럴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을 전한 것.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대왕고래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연이어 관련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 등이 사실관계를 일부 확인하긴 했지만 “사업성을 논하기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을 나타낸 것.

‘이제 우리도 드디어 산유국 대열에 들어선다!’는 장밋빛 비전은 사실 예전에도 수 차례 제기되긴 했다. 그런데 과거의 그런 시도 대부분은 다분히 정치적이거나 정무적인 의도(말하자면 당시 권력이 뭔가 감추고 싶어하는 일이 있었다거나, 시민들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리기 위한)로 빛이 바랬고 실제로도 뭔가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진 못했다.

솔직히 이번의 대왕고래 프로젝트도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윤통의 최초 언급으로부터 8개월 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이 다시 한번 대왕고래를 소환했다. 본인의 탄핵 재판에 참석해서 말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엔 언필칭 ‘야당의 입법 폭주’가 있는데, ‘국회에서 대왕고래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사실을 언급한 것. 당연히 이에 대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타당성 평가도 없었고 구체적인 자료 자체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지난 2월6일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사실상 빈손으로 끝났음이 입증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식 발표를 통해 “가스 징후가 일부 있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동해바다에서 대왕고래를 만날 수는 없었던 것.

이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한 회사가 거의 1인 기업 수준의 영세한 구멍가게였다든가, 회사 대표가 잠적했다든가(!), 무엇보다 발표 시기가 윤통이 정치적으로 거의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그것.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 대왕고래 프로젝트 자체에 관한 게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우리도 산유국’이라는 달콤한 명제.

아직 모르는 사람이 제법 많은데,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석유(및 석유 제품)을 수출하는 나라다. 그것도 꽤 많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수출액이 세 번째로 많다(2024년 기준 237억6천224만 달러). SK에너지,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이와 같은 아웃풋은 전년 대비 9% 성장한 수치. 그리고 이 수치는 우리나라가 연간 수입하는 원유 물량인 약 400억 달러의 절반을 웃도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어디에서 석유가 나고 있는 건가? 그렇지는 않고 해외에서 수입한 원유를 정제하여 수출하는 것. 경유와 휘발유, 항공유, 나프타 등이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정제되어 세계 73개국(작년 기준. 이 또한 역대 최다)에 수출된 것인데, 이는 세계 6위의 규모이기도 하다.

한국석유공사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이라크의 바드라 유전(Badra Oil Field)

우리나라가 산유국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사실상 산유국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동해바다 어딘가에서 석유가 나오려나 가스가 나오려나 손가락 빨면서 여기저기 ‘쑤셔보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나라의 석유 수출에 관한 향후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고 이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일 터다.

일단 중국과 인도의 석유(와 석유제품) 수출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리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경기 둔화가 오래 이어지면서 수요도 감소하며 무엇보다 친환경 에너지원 위주로 시장이 대체되면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제품보다 마진이 높은 항공유도 미국과 유럽에선 이른바 친환경 항공유(SAF)로 점차 전환한다고 하니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고래를 잡으러 떠난 동해바다에서 정작 고래는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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