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격언이 있다: ‘정치에서 지지하는 이들이 많은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싫어하는 이들이 적어야 한다’는 것. 대저 유권자들의 표심이란 갈대와도 같은 것이어서, 선거를 앞두고서 각 캠프는 지지세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일과 함께 네거티브 요소를 최대한 잠재우는 일에 매진하곤 한다.
까놓고 말해서,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선거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의 주인이던 기간 동안 저지른 ‘난장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그가 ‘또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는 건 일단 그를 지지한 유권자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반대로 현재의 여당인 민주당(당연하지만 ‘미국’ 민주당 이야기다)과 카말라 해리스 후보에 대한 지지가 그만큼 높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인 동시에, 민주당과 카말라 해리스 후보의 패배.
적어도 (1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을 제외한)지난 수십 년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사례를 꼽아보면 거의 기억에 없다시피 하다. 그만큼 ‘공성전’에선 공격보다 수성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법인데 이번 선거에선 그렇지 않았던 것. 그렇다면 미국 민주당은 왜 선거에서 패배한 것일까?

당연히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작용했을 것이다. 연임이 가능한 미국 대선에선 현직 프리미엄이 꽤 크다고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것도 현직으로서 지지율이 높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지금 미국에선 바이든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20% 내외로 매우 낮은 편이라고 한다(그래도 대한민국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에 비하면 높네 ㅋㅋㅋ).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경기 불황,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지원 문제, 이민자 대책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터. 게다가 민주당은 애초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고 나섰다가 본전도 못 찾고 부랴부랴 해리스 부통령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그것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던 것.
이미 전세계에서 날고 긴다는 똑똑한 분석가들과 여론조사 기관들이 총평을 내놓고 있는 와중 나도 숟가락 좀 얹어보자면, 한 마디로 ‘미국’ 민주당이 유권자들과 괴리된 채 기득권에 안주하며 집권당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패인이 아닐까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셀럽들은 수없이 많다. 현재 미국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롯해서 비욘세와 카디 비 같은 뮤지션들은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민주당과 해리스 후보 지지에 나서기도 했다. 그들 중엔 (절반은 농담조로)’아예 민주당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 대놓고 트럼프를 까댔던 로버트 드 니로, 심지어 공화당 소속으로 주지사까지 지냈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유명인들의 지지가, 과거엔 어땠을지 몰라도 2024년엔 약빨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 물론 대통령선거 같은 중요한 이벤트에서 몇몇 유명인들의 특정 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유효한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선 더 깊고 자세한 탐구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민심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 이번에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바로 이곳,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임기가 불과 절반 조금 넘게 지났는데도 벌써 레임덕이 왔고,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인 배우자의 각종 스캔들에 대해 나름 변명을 하고자 장시간의 기자회견까지 열었는데도 지지율은 오히려 더 내려갔다(!).
현재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시기였던 3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대한민국 역사상, 아니, 전 세계의 민주주의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던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치러진 조기 선거에서 민주당이 (당시 여당이었던)새누리당의 탄핵으로부터 반사 효과를 전혀 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따지고 보면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이자 전 대통령)는 두 번째로 후보에 나섰던 인물이기도 하고.
여기에 하나 더. ‘개고기를 무슨 고기로 속여 팔았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3년 전 대한민국 유권자들 중 다수는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이자 당시 후보)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천착했던 여러 가지 이슈들 중 특히 여성 관련 정책의 반대급부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선거 전략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요컨대 태평양 건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당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정말 중요한 민심에 대해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저 쪽이 이런저런 잘못을 했으니 우리를 찍어주세요’라고? 누가 해도 지금 대통령보단 나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너무나도 당연한 건 접어두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 대한민국 언론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본지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는데, 이번 선거 결과를(타당한 근거에 의해) 거의 제대로 예측한 국내 미디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는 물론이고 수많은 뉴스와 언론사들, 도대체 그 엄청난 운영비(여기엔 당연히 시민들이 낸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들여가면서 뭘 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