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참 재미있게 봤던 영화 한 편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한 <칠드런 오브 맨>의 세상에선 모종의 이유로 인류 전체가 불임을 겪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작품 속 시대적 배경인 2027년을 기준으로 ‘인류 중 가장 어린 아이’는 영화가 개봉한 2006년에 태어난 18세.
그런 중, 정말 불가사의하게도 뱃속에 아이를 가진 여성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고… 작품 속에서 영국군과 레지스탕스간 총격전이 벌어지는 와중 바로 그 아기와 엄마가 전장을 가로질러서 걸어가자 양쪽에서 “사격 중지!”를 외친다. 이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롱테이크 쇼트로 손꼽히는 장면이라고 할 만하다.
<칠드런 오브 맨>에 대한 보리스 매거진의 더 자세한 리뷰는 아래 링크에서.
현실이 된 디스토피아의 시대, 그래도 희망은 있는가: <칠드런 오브 맨>

정부는 지난 달,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특히 윤대통령은 고대에 번성했던 도시국가 스파르타가 멸망한 원인이 바로 인구 감소 때문이라고 지적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그의 이런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윤대통령이 지금껏 적지 않게 말실수를 했음에도’ 스파르타의 멸망 원인이 인구 감소 때문이라는 시각이 전혀 틀린 건 아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가 자신의 저서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이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와있다-에서 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등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하나마나한 수준’의 재탕 삼탕 정책들을 수립하여 시행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조금 희한한(?) 건 공영방송 KBS가 이에 화답하며 ‘저출생 상황 극복’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공언했다는 것. 요즘 아이를 가질 연령대에 속하는 이들은 KBS로 대변되는 지상파보다 유튜브나 OTT를 훨씬 더 많이 볼 텐데…
노골적으로 ‘살만해진’ 나라일수록 인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아니 아예 줄어드는 현상은 사실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의 인구 증가는 외부로부터의 유입에 의한 것이기에 논외로 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 현상은 정말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그 추세가 빠른 것.
그렇다면 그 정확한 원인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전쟁통’에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했는데(비록 적성국이 보낸 ‘오물이 담긴 풍선’이 하늘에 떠다니긴 하지만), 어쨌든 당장 전쟁의 위협은 없이 평화롭기만 한 나라에서 왜 사람들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하는 것일까?

뭐, 뻔하지 않은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다 돈 때문이란 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데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인구 감소 문제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두 가지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여전히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들 중 하나이며(1960~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2024년의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것.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면 맘 편하게 키울 수는 있나? 꼬맹이 시절부터 무제한의 경쟁에 시달려야 하며, 어느 정도 크고 나서 남자 아이는 군대 보내니 얼차려 받다 사망하고, 여자 아이는 데이트 폭력에 희생되고, 경력도 경험도 없이 사회에 나와선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다 각종 산업재해로 사망하는데 기업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강도는 높고 임금은 낮은 노동에 시달리며 집도 차도 못 사고 그냥 그렇게 지내는데 SNS에선 헛바람만 잔뜩 든 이들의 자랑 공세에 한숨만 폭폭 쉬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솔직히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는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수준을 넘어서 이젠 누구도, 그 어떤 정책도 완벽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기회가, 과거에 몇 번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 같이 손에 손 잡고 정해진 미래를 향해 가는 것.
결국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아야 사회도 굴러가는 것이란 걸, 책임 있는 자리에서 어떤 정책이든 대책이든 마련해야 마땅할 이가 꼭 알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