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놓쳐서 천만다행(?)이다

내가 세상 그 무엇보다 좋아하고 아끼는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참 가슴이 아프면서 화딱지가 날 일이라면 그저 단지 내가 응원하는 팀과 선수가 경기에서 패한 경우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좋았지.

지난 1월부터 한 달간 열렸던 AFC 아시안컵 카타르 2023(대회 자체는 올해 1월부터 열렸으나 이는 실제 예정보다 미뤄진 스케줄로, 원래는 2023년 연말에 열려야 했으니 2023이 맞다)은 개최국 카타르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카타르는 두 번의 대회에서 연속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거둔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16강전과 8강전에서 연달아 드라마를 쓰면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긴 했지만 준결승 요르단과의 경기에선 그야말로 ‘쪽도 못 쓰고’ 0:2의 참패. 대회 전체적으로 보면 6번 경기를 하는 동안 고작 1승밖에 올리지 못했고(무승부에 이은 연장전의 경기 결과는 공식 기록으로 치지 않는다) 무려 10실점. 선수들의 투지와 연장전에서의 드라마틱한 승리에 가려서 그렇지, 막상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데 가슴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세상에선 종종 일어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번 아시안컵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력이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아시아 각국 대표팀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를 이룬 결과라는 생각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은 둥글고, 스포츠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사실. 문제는 대한민국 대표팀, 나아가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 책임이 있는 감독과 협회(엄밀히 말하면 협회장)가 이 상황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고개 숙인 축구협회장. 작년에 축구인 기습 사면 시도를 했을 때의 사진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대회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검토하는 회의를 갖겠다고 했던 말을 채 24시간도 되기 전에 뒤집고 가족과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애초에 설 연휴가 끝나고 축구협회에서 가질 예정이었던 임원회의는 정몽규 회장의 갑작스런 불참 통보로 아예 취소되기까지 했다.

진짜, 망조가 들려니 기둥뿌리부터 흔들리는 느낌이다. 정몽규 회장의 실제 직장인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아파트가 붕괴될 때의 딱 그 느낌(그는 2년 전 화정아이파크 붕괴 당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는데 아직까지 실제로 물러나진 않고 있다).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작년에 한국 축구계에 있었던 여러 무리수가 왜 벌어졌는지 그 퍼즐이 맞춰지는 듯하다. 일단 클린스만 감독 선임부터. 카타르 월드컵 이후 협회에선 벤투 감독과는 헤어지기로 합의를 하고 새 감독 후보군을 세운 뒤 일부는 상당한 수준까지 협상을 진척시켰으나 정회장이 그 모든 일을 하루아침에 엎어버리고 독단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데려왔다. 여러 팀에서 감독을 맡았으나 이렇다 할 성과도 전혀 없었던 데다가 지난 3년간은 날백수나 다름없던 이를 수십억씩 써가며 갑자기 ‘모셔온’ 이유는 뭘까? 그리고 작년 3월엔 A매치 평가전을 불과 한 시간 앞두고서 승부조작 전력이 있는 여러 축구인들을 기습적으로 사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또한 당연하게도 정회장의 독단에 따른 것.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가 다 있다. 애초 이번 아시안컵은 중국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중국이 개최권을 반납한 후 대한민국은 축구협회 차원에서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축구)외교적 역량 부재로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정몽규 회장은 현재 국제축구협회(FIFA) 평의원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으나 국제 축구계에 받아들여지기론 그냥 무능한 인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그런 상황에서 언감생심 국제축구협회 부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 거기까지 가기 위해 국제 축구계에서 인맥이 상당한 클린스만 감독과 ‘쿵짝’이 맞은 것이다.

이번엔 승부조작 축구인들의 기습 사면 시도에 대해서. 애초 축구협회는 회장으로 2회 연속 연임까지만을 인정하고 있었는데, 정몽규 회장은 현재 3회 연임을 하고 있다(당연히 스스로 협회의 정강을 개정하면서 이게 가능해졌다). 그것도 모자라 4회 연임까지 바라보고자, 즉 자신을 위한 표를 던질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 축구인들의 사면을 시도한 것.

무능한 감독과 한심한 협회가 대표팀의 축구, 나아가서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을 작정하고 끌어내리려 하는 이런 상황에 손흥민이, 황희찬이, 이강인이, 조규성이, 그리고 조현우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이 말이다. 자신이 속한 리그가 시즌 중이었건, 시즌이 아니었건 대표팀의 일원으로 대회에 참가해서 열심히 뛴 선수들에겐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우승까지 가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란 생각까지 든다. 만에 하나라도, 진짜 우승까지 했으면, 또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다 덮고 넘어가자고 했을 거 아닌가!

글 제목을 무척이나 도발적으로 새겨놓은 점에 대해 길고 긴 변명을 해봤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으면 책임 있는 사람이 일단 수습을 하고, 차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든든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이 당연한 명제가, 2024년의 대한민국에선 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인가?

손흥민, 누구보다도 할 말이 많고 아쉬움도 많을 것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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