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전산망 장애 사태가 빚은 스노우볼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대민 행정 서비스가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큼 신속하고 저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신상에 관한 서류 하나 떼는 데에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도 하며, 가까운 일본만 해도 여권 하나 만들려면 일주일 정도 걸리니 그나마 괜찮다 싶지만 비용이 무척 비싸다고. 따지고 보면 외국의 행정 서비스 수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것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유구한 전통(?)에 따라 사람을 그야말로 ‘갈아 넣은(…)’ 결과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도 한국에서 살면서 편한 구석 하나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지난 2023년 11월17일 전까지는. 지난 17일,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 전산망이 멈춰서는 일이 벌어졌다. 말 그대로 입력도, 출력도, 그 무엇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먹통이 된 것. 그런 데다 지난 11월22일에는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발급 시스템의 업무가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아직 한 발 더 남았다(…). 바로 그 다음날인 11월23일엔 조달청의 온라인 시스템 나라장터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나라장터 같은 경우는 월말에 연말도 겹쳐서 전국의 많은 기업에서 입찰이 있었을 건데, 담당자들은 속 좀 탔을 듯.

불과 며칠 간격으로 한 나라의 행정 시스템 전반이 다운되었다는 건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예전 IT 업계에 잠시 몸 담았던 시절을 상기하면 솔직히 그리 놀랍지도 않다. 시스템 유지 및 보수 측면이 생각보다 허술한 경우가 은근히 많기 때문. 아, 이번에 문제가 된 행정 전산망이 허술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특정한 입장을 갖기엔 해당 분야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지식이 전무한 것과 마찬가지니.

다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사태가 벌어졌고 분명 누군가는 피해를 봤으니 그 이유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음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춰야 할 대처는 어떤 것인지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행정 전산망 장애,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일단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 애초 행정안전부에서는 특정 장비가 오류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불과 이틀 뒤에는 또 연결 포트가 불량이어서 그랬다는 등 하면서 말을 바꿨다. 전/현직 해당 직종 종사자들이 즐비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행안부의 이런 설명에 대해서도 말이 안 된다며 온갖 억측을 내놓는 중인데, 앞서 언급했듯 해당 분야에 대해선 내게 이렇다 할 지식이 없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겠다.

그런데 진짜 가관(?)인 것은,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 방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액션. 다음의 뉴스를 보자.

‘행정전산망 먹통’ 다시 없도록 대기업도 ‘공공 SW’ 참여 가닥(서울신문 링크)

ㅋㅋㅋ 기사를 보고서 한참 웃었다. 이 사태의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굴러가다니. ‘니네’는 결국 이렇게 하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진짜 누구 말마따나 일부러 이런 것 아닌가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상황. 기사에도 나오지만, 소위 대기업에서 행정 전산망 관리를 맡게 된다고 해도 그걸 대기업 직원들이 온전히 진행할 거라는 생각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가 싶다. 당연히 하청에 재하청을 주겠지.

게다가 공공 부문에(앞서 이야기한 ‘나라장터’를 통해서!) 입찰을 해본 적이 있는 이라면 알겠지만, 공공 부문은 비슷한 일을 하는 일반 사기업에 비해 대개는 비용이 짜다. 쉽게 말해서 대기업에서 행정 전산망 유지 보수 같은 일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렇다면 하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그 참, 어떻게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인지. 그저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