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현재 ATP 랭킹 1위이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소리(그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리는 이들은 팬들 외에 현역 선수들도 많다)를 듣는 노박 조코비치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만한 일이 대한민국에선 예사로 일어나고 있다. 가정집에서도, 영업장에서도 흔히 보는 장면인데, 바로 테이블이나 의자 다리에 테니스공을 끼우는 것.
가정집의 경우 층간소음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테이블이나 의자 다리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바닥이 긁히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한데, 외국에서도 이런 인테리어 소품(?)을 사용하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하여튼 참 희한한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하필이면 테니스공일까?
이전까지 몰랐던 이라면 더 희한하게 느낄 만한 일에 대하여. 실제 테니스공에 칼로 십자 모양을 내서 테이블이나 의자 다리에 끼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 아예 가구 다리에 끼우기 위한 용도로 공장에서 출하되는 제품이 있으며, 그런 제품엔 당연히 십자 모양의 칼집이 진작부터 나 있다(물론 실제 테니스공에 칼집을 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비추. 칼로 테니스공에 칼집을 내는 과정에 칼날에 끈적한 물질이 묻어서 잘 안 지워진다. 어떻게 아냐고? 나고 알고 싶지 않았다. ㅠㅠ).
그리고 애초부터 테이블/의자 다리에 끼우기 위한 용도로 나오는 ‘가짜 테니스공’은, 당연하지만 테니스 경기에 사용할 수가 없다. 테니스 경기는 고사하고 그저 아이들이 갖고 놀기에도 부적합할 정도로 반동이 없다. 그저 태어나기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태어난 것.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괜한 상념이 떠오른다. 요컨대 물건이든, 사람이든, 어떤 자리에서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가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만약 내가 테니스공이라면(?) 당연히 조코비치나 로저 페더러나 라파엘 나달 같이 유명한 선수들이 활약하는 경기의 공인구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시궁창, 이 아니라, 아무튼 평생 동안 테이블이나 의자를 받치고서 바닥을 긁으며(…) 살아가는 삶을 면치 못한다는 건 정말이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반면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로 인해 층간소음도 예방되고, 바닥이 긁히거나 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면 또 그게 맞는 쓰임새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물건에게도, 사람에게도 가장 잘 맞는 자리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혹은 가장 잘 하는) 일이 맡겨지는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진짜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필경 무척 행복할 것이다. 고작 몇 백 원짜리 (가짜)테니스공을 보고서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