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취향 코너(링크)에서 최근 봤던 영화들과 드라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작품도 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최근 본 한국영화와 드라마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수십 년 전의 한국 가요들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고, 그 쓰임새가 정말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졌다는 것.
<밀수> 같은 경우는 아예 시대적 배경 자체가 1970년대였으니 그 시절 가요가 쓰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그렇지만 엄밀히 1970년대 초반엔 나오지 않았던 곡들도 일부 사용되긴 했다. 대표적으로 권 상사와 애꾸가 장도리 일행과 맞서 활극을 펼치는 장면에 나왔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1978년에 발매된 산울림 2집에 실린 곡이다). 그 외에도 <무빙>에서 장주원과 황지희의 로맨스 장면에 나왔던 ‘담다디’, <마스크걸>에서 김모미가 어렸을 적 장기자랑에서 불렀던 ‘리듬 속의 그 춤을’, 하다못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김영탁이 노래방 기기까지 동원해서 불렀던 ‘아파트’ 까지도 이 플레이리스트(?)에 포함된다.
따지고 보면 <밀수>를 제외한 작품들의 경우 그 노래들은 대부분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 장면에 나오긴 한다. 말하자면 그 노래들이 가장 흥했던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기능을 한다는 건데, 어차피 영화나 드라마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매체다 보니 연출의 측면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하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그 노래들이 정말 적재적소에 잘 쓰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김PD 꼬맹이 시절 학교 장기자랑의 주요 레퍼토리였던 ‘담다디’는 정말 오랜만에 들었는데 하필이면 ‘구룡포’ 장주원의 풋풋하면서도 절절한 시절을 보여줬다. 덧붙여서 후에 그가 딸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그럴 수밖에 없는지) 나타내는 식으로 기능했다고 본다.
<마스크걸>에서 주인공 김모미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 ‘리듬 속의 그 춤을’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김완선의 대표곡이기도 하니 더욱 잘 어울린다. 특히 (은근히 1980년대 전후 가요에서 그런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전주가 유독 길어서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두근두근했던 김모미의 상황을 잘 보여주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가 늙어서(ㅠㅠ) 옛날에 참 많이 듣고 익숙했던 노래들에 상대적으로 후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여서 특히 <밀수>에 나왔던 ‘앵두’(by 최헌), ‘님아’(by 펄 시스터즈), ‘바람’(by 김정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by 산울림), ‘미운 정 고운 정’(by 나미) 같은 곡들은 은근히 사이키델릭한 구석이 느껴지는 듯해서 놀라기도 했고. 사실 1960년대부터 대략 1980년대 정도 사이에 흥했던 영미권의 록 넘버들은 그렇게 좋아하고 많이 들었으면서 정작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가요는 내가 이렇게도 몰랐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일찍 가수 생활을 접었지만 국내외에서 뒤늦게 조명을 받은 가수 김정미의 ‘햇님’이 바로 그 곡. 한참 이전에도 김정미란 이름은 알았고 그 독특한 음색도 귀에 익어서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딱 10년 전에 개봉한 영화 <더블>(제시 아이젠버그가 1인2역으로 출연했던 그 영화. 참고로 감독은 영드 <IT 크라우드>에서 약간 띨띨한 컴퓨터광 역으로 나왔던 리처드 아이오데)의 엔딩 크레딧에 ‘정말 뜬금없이’ 흘러나와서 내 귀를 의심하게 했던, 바로 그 노래다. 그 상황이 어찌나 희한했는지, 당시 나 포함해서 관객이 서너 명밖에 없었던 그 늦은 시각의 영화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다.
그 노래를 전한다. 김정미는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사실 재평가는 이미 끝난 것 같기도 하지만) 가수라는 말도 덧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