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3월의 A매치 주간에 열린 대한민국 대표팀의 두 경기, 콜롬비아(3월24일 2:2 무승부)전과 우루과이(3월28일 1:2 패배)전은 새 사령탑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후 첫 경기여서 많은 관심이 집중됐는데 결과는 보시다시피 시원찮았다. 물론 이제 갓 부임한 감독이 뭐 대단한 걸 보여줄 만한 시간이 부족하긴 했고, 앞으로 더욱 가다듬을 일이 남았다.
한국 축구의 진짜 문제는 대표팀의 경기력이나 승패에 있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대내적으로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축구협회가 문제의 원흉이었던 게 그야말로 아연할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A매치 평가전이 열렸던 지난 3월28일, 경기를 불과 한 시간 앞두고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어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는데 그 사면의 명단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승부조작을 벌인 최성국, 권집, 김동현 등의 이름이 들어있던 것. 아는 사람은 아는 이 이름들은 지난 2011년 K리그를 발칵 뒤집었던 대규모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던 그 이름들이다. 게다가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연루된 선수들 몇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평소 스포츠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라면, 승부조작이 그리 큰 사안인지 궁금해할 수 있을 듯하여 스포츠 팬을 자처하는 1인으로 몇 자 남겨본다. 우선 승부조작이 스포츠에서 다른 그 어떤 사안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스포츠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에게 평등한 룰에 따라, 공정하게 승부를 겨루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승자를 축하해주는 모습이 바로 스포츠가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웃고 울리는 이유일 텐데 승부조작이라면 그 근본 중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전 세계 어느 종목 어느 리그에서건 승부조작은 그 뒤에 큰 ‘어둠의 세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 정당하지 못한 돈을 버는데, 바로 그 과정에서 승부조작이 행해진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진보하고 성장하려면, 이런 검은 돈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세 번째 이유는, 한 번 승부조작이라는 범죄에 맛을 들인 선수나 지도자는 반드시 다음에도 똑같은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종목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은 선수나 지도자나 직업으로서 평생을 기약하기는 힘든 분야다. 선수로서나 지도자로서나 지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전성기는 대개 짧아서 길어야 몇 년 정도인데, 그 기간이 지나면 여러 모로 헛헛해지는 것이 사실. ‘바짝 벌 수 있을 때’ 벌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지나치면 바로 승부조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나 세 번은 쉽다.

그런 엄청난 범죄에 연루된 선수와 지도자를 사면한다고? 축구협회가? 당신들이 뭔데? 대한민국 축구를 몇 단계나 퇴보시킨 장본인들에게 다시 ‘축구로 먹고 살’ 길을 마련해주겠다는 이유가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기 위해서라고? 개소리하지 마라.
게다가 이번 사면에 있어, 절차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고 축구협회의 상위기관인 대한체육회에서조차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와중, 더 웃기는 일은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이번 사면 시도가 안팎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자 축협은 ‘재심의’를 하겠다며 다시 이사회를 소집했다(재심의 이사회는 2023년 3월31일 오후 4시에, 비공개로 열리며 이사회 전후로 참석한 이사들에 대한 기자들의 취재는 모두 불허됐다).
긴 말 필요 없다. 대한축구협회 최고위급 라인의 입김이 짙게 작용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길이 없는 이번 일에 대해 정몽규 회장은 모든 축구팬들과 축구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퇴는 그 다음에. 사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지 않은가? 명색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목전에 두고 있을 당시부터 구단주로 있던 구단은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2부에서조차 바닥을 기는 경기력 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부터가 그 증거에 다름 아니다.
2023년, 월드컵에서 영광스런 16강 진출이라는 호성적을 거둔 지 불과 몇 개월 지나자마자 대한민국 축구는 역대급 흑역사를 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까지도 대표팀 감독으로 누가 올지 궁금해하고 있었다니. 클린스만 감독은 취업사기라도 당한 느낌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