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광고 전화를 받았다. 평소 이런 전화를 받으면 거의 받자마자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끊어버리는 편.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냥 끊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건, 그래도 ‘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침에 좀 한가하기도 하고(?),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만 왠지 쌀쌀맞게 대하기가 좀 어려웠던, 나이가 다소 든 분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은 안 하고 그냥 스피커폰으로 전환시켜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계속 듣게 되었다.
솔직히 무슨 제품의 광고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보험 어쩌구 하는 얘길 했으니 보험 광고겠지. 그런데 이런 광고 전화를 계속 듣고 있으니 예전하고 사뭇 다르게 요즘은 좀 패턴이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예전의 광고 전화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답변을 이끌어내면서 특정한 선택을 유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아침에 받은 전화는 그저 ‘속사포처럼’ 어떤 내용을 주루룩 읊어대는 것이었다.
체감상으론 거의 10분 정도 지났나 싶었는데 실제 시간으론 한 5분여가 흐른 뒤(아, 역시 상대성 원리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처음으로 그 직원이 나에게 모종의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통화 종료.
요즘 스마트폰 쓰면서 광고 전화 및 메시지 수신을 거부하는 앱 하나쯤 안 쓰는 사람 없지 싶은데, 또 ‘안 좋은 쪽’으론 기가 막히게 빠른 발전 속도(?)를 자랑하는 IT 기술은 그 비슷한 앱을 얼마든지 무력화시키는 솔루션을 이미 갖고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받은 전화처럼, 인터넷 전화 말고 일반 전화 번호(지역번호가 멀쩡히 있는)나 010으로 시작하는 개인 전화 번호로부터 오는 경우라면, 그리고 이런 번호도 ‘역시 특별한 솔루션으로’ 시시각각 달라지기까지 한다면 그런 전화나 메시지를 완벽하게 물리적으로 막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싫은 광고 전화가 어딘가에서부터 계속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하지만, 이미 공공재 수준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개인정보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와 각종 서비스의 회원가입 과정에서 작성된 개인정보가 악의적인 해커에 의해, 혹은 멍청한 보안 관리자에 의해 여기저기 줄줄 새는 광경을 우리는 짜증날 정도로 많이 봤고 그 결과를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유출된 정보 때문만은 아니고, 실제로 어떤 서비스에 가입을 할 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는, ‘광고성 전화/메시지 수신에 대한 동의’ 부분에 부지불식간 체크를 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이처럼 적지 않은 규모의 광고 프로모션을 하는 업체는 대부분 대기업이다. 이런 대기업이 소비자에게 광고 전화를 거는 일을 하는 이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할 리가 만무하다. 귀찮은 일, 위험한 일은 어디까지나 외주 업체와 ‘일회용 반창고나 다름없는’ 비정규직 직원의 몫이란 점도 입맛을 씁쓸하게 하는 한 가지 이유였다.

차디 찬 한파가 부는 최근 영화계에서 이례적으로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우리 주변에 광고는 넘쳐나지만, 역으로 그 어떤 광고에도 크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다. 거는 사람도 귀찮고, 받는 사람도 더 귀찮은 광고 전화가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테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형태를 바꿔서 계속 생명을 유지할 텐데… 그 다음 단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