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주4일 근무제를 준비해볼까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있어 2021년 10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나날이 되었다. 추석 연휴를 막 지난 10월 첫 주엔 개천절이 일요일과 겹치면서 바로 다음 월요일인 4일이 대체휴일이 되었고, 또 둘째 주엔 한글날이 토요일과 겹치면서 바로 다음 월요일인 11일이 대체휴일이 된 것. 결과적으로 2021년 10월은 2주에 걸쳐 공식적으로 주4일 근무를 하게 된 셈으로, 앞으로 언제가 될진 모르겠으나, 그리고 언제가 되건 실제 되긴 할지 모르겠으나, 정말로 주4일 근무를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명실상부 베타테스트라고 할 만한 나날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연휴가 길어질 때 산으로 들로 혹은 해외로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고 또 (검사 수가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코로나 확진자 수가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는 때라 여행객 수는 당연히 예전만 못하다. 요즘 낮에는 아직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져 나들이 하기에도 딱 좋은 때고 정말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럴 때 콧바람 쐬질 못하니 많이 답답하긴 하다. ㅠㅠ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SF 작품 ‘유년기의 끝(아서 C. 클라크)’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과학 기술을 가진 외계인과의 만남 이후(“충분히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아서 클라크다), 그 과학 기술을 많이 빌릴 수 있게 된 인류는 산업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높여 잉여 생산물이 넘쳐나게 되고 일주일의 절반인 3일만 일을 하더니 나중엔 업무 시간이 그보다도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은 자기 계발에 투자해서, 지구상 인류의 대부분이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준의 운동 능력을 갖춘 스포츠맨이 되든지, 베토벤이나 고흐 같은 예술 부문의 창작자가 되든지, 노벨상을 몇 번이나 받을 수 있는 뛰어난 과학자가 되든지, 아니면 그들 중 두 가지 이상이 되든지 하는 식.

정말 1950년대에 나온 SF 작품다운 모습.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할 만하지만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의 작품이란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사실 이 작품은 그 뒤에 더욱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그 부분이 더 중요하니.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지금보다 휴일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근거도 있다.

다니엘 쿡의 생산성 법칙 그래프

경영학에서 ‘다니엘 쿡의 생산성 법칙’이라고 부르는 법칙이 있다. 주(週) 노동시간을 비교했을 때, 40시간 일하는 노동자와 60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처음엔 60시간 노동자의 생산성이 더 높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60시간 노동자의 생산성은 급격히 하락하는 반면 40시간 노동자의 생산성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바로 그 내용. 그리고 대한민국의 평균 노동시간이 OECD 국가의 평균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는 점도 더 많은 휴일이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헨리 포드가 주5일 근무를 강제로 실시했던 1926년 이후(물론 헨리 포드가 단순히 ‘착해서’ 그런 방침을 시행한 건 아니고, 주5일 근무제가 생산성을 더 높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도 대략 2000년대 초반이다. 지금으로부터 그렇게 많이 지나지도 않은 예전만 해도 토요일에 온전히 휴무를 한다고 하면 무슨 나라가 거덜이 나고 살림살이는 쪽박이라도 찰 것처럼 난리 치는 자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주5일 근무제는 우리 생활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일주일에 하루를 더 쉬게 되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노동 시간이 월등히 높으니까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휴일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거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제 우리도 주4일 근무제에 대한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일단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고, 노동자들의 연령도 당연히 높아지면서 노동 시간도 이전보다 짧아지면 짧아지지 결코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관련 기술의 발달로 노동 생산성은 어쨌든 과거에 비해 더 높아질 것이고, 노동자들의 늘어난 여가 시간이 발생시키는 산업 생산 부문에 대한 인식과 규모도 더욱 커질 것이 자명하다. 결국 정치 부분에서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오긴 올 것이라고 본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 궁금하긴 하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