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공기(公器)인가 공기(空氣)인가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애초에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기회를 놓쳐서 나중엔 겉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여러 속담 중에서도 꽤 자주 회자되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그와 관련한 사안에 대한 모든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대통령실의 요즘 상황이 꼭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지난 11월9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코앞에 둔 날 MBC 취재진에 대해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난 9월 미국 순방 중 발생한 이른바 ‘욕설 논란’을 집중 보도한 MBC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위의 상황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11월18일에야 최초로 마련되었다. 동남아시아 순방 이후 처음으로 재개된 바로 그 ‘도어스테핑’, 즉 대통령의 출근과 동시에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약식 회견 자리가 마련된 것.

이 자리에서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배제가 선택적 언론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은 ‘자유롭게 비판하기 바란다’면서도, 동시에 ‘(MBC가)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동맹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악의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퇴장에 이어,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그도 YTN 기자 출신이다) 사이에 발생한 설전. 위의 영상을 보고 든 생각은 두 가지. 우선 하나는, 안 그래도 지지율이 형편없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자꾸 무리수를 두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게 정치인이 ‘유감’이라고 딱 한 마디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특정한 사안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싶을 때 노련한 정치인은 그저 유감이라고, 딱 한 마디 던지고 만다. 그러면 사실 대부분의 사안은 거기서 끝나기 마련.

유감이라는 말은 사과도 아니고, 본인의 잘못을 고백하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공허한 ‘말’일 뿐이다. 일반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쓸 일은 거의 없다는 데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냥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한데, 그거 한 마디를 못해서 지금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호미로 막을 일을 장차 가래로도 막기 힘든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범죄자를 엄벌하는 일만 수십 년간 했던 사람이라면, 그저 ‘유감’이라고 한 마디 하는 게 뭔가 크게 책 잡힐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세련된(이라고 쓰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이라고 읽는다) 스킬과 적절한 수준의 보좌 모두 부재한 상황이 그저 안타깝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든 생각은, 위의 영상에서 MBC 기자가 대통령실 비서관과 1:1로 영혼의 ‘대거리’를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그 많은 기자들 중 누구도 같은 기자 편(?)을 들거나, 아니면 다른 편(???)을 들거나, 최소한 이 설전/언쟁을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사람들이 돌도끼로 공룡 따위를 사냥하거나 그렇게 사냥을 해서 얻은 가죽을 기워 옷을 만들어 입고 하던 시절에, 기자라는 직업이 우리 시대의 대표적 양심이자 선망의 대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권력 감시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나, 대통령에게 “도대체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냐”면서 따지던 그 열혈(?) 기자들은 어디로 간 건지. 하다못해 이번 대통령의 순방 중 전용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 기자 두 명만 ‘따로’ 불러서 환담을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따져 묻는 기자 하나도 없었으니.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그냥 공기(空氣)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언론이 진정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언론, 우리 사회의 공기(公器)인가 공기(空氣)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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