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개구리를 위하여

지난 봄, 염상섭 작가가 쓴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읽었다. 한국 근대문학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에 기억만 하고 있다가 이번에 기회가 되어 읽은 것. 간단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주인공 ‘나’가 친구들과 함께 광인으로 일컬어지는 김창억이란 사람을 만나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가선 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 김창억의 말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는 정도가 되겠다.

짧은 분량의 작품을 보고 난 이후, 조금 더 궁금해져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도 덧붙인다. 일단 이 작품은 작가 염상섭의 데뷔작이면서 지금으로부터 무려 100년 전에 첫 출간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조금 희한한 이야기가 있는데, 작품 속 광인 김창억은 사실 또 다른 작가인 김동인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작품이 나올 당시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작품 속에서 결코 긍정적으로는 그려지지 않은 김창억의 실제 모델 김동인은 또 나중에 자신의 작품 ‘발가락이 닮았다’에서 염상섭을 쉽게 연상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염상섭을 디스하고… 결국 나중에 둘은 화해를 했다고 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런데, 개인적으로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대해 느끼는 색다른(?) 감상이 있어 칼럼을 통해 전하기로 한다. 일단 작품의 제목 자체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작품의 주인공 ‘나’는, 김창억이란 사람을 만나자마자 본인의 중학생 시절 박물 과목(요즘으로 치면 아마도 생물?)을 담당했던 선생이 딱 생각났고, 그러면서 교내 과학 실험실에 있던, 커다란 유리병 속에 배를 까뒤집힌 채(!) 포르말린과 함께 들어있던, 청개구리의 해부도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저렇게 된 것.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저런 내용을 보면서 중학생 시절 과학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했던 게 생각이 났다. 요즘 중학교엔 아마도 이런 커리큘럼이 없을 텐데,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엔 실제 꼬꼬마 중학생들이 메스와 가위를 들고 개구리 배를 직접 가르는 해부 실습을 했다!

일단 해부를 하려면 개구리를 수급해야 할 텐데, 그 시작부터 코미디였다. 과학 담당 선생은 아이들의 주소를 일일이 확인해가면서 “2번, 일어나. 너네 집 대문 나와서 곧바로 10분만 쭉 걸어가면 보이는 논두렁 근처에서 개구리 잡을 수 있어. 다음주까지 잡아와. 다음, 5번 일어나. 너네 집 대문 나와서 오른쪽 담벼락 지나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거기서 개구리 잡을 수 있으니까 다음주까지 잡아와.”

이런 식으로 해서 많은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아왔다. 개중에는 자기 동네엔 개구리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나 가서 기어코 개구리를 몇 마리씩이나 잡아온 녀석들도 있었을 정도. 아무튼 이렇게 해서 개구리 수급이 완료되고, 결전의 날(?)이 밝았다.

당시 과학 실습은, 약 6명~8명 정도가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예닐곱 개 놓인 과학실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개구리는 테이블당 한 마리씩 지급되었고. 한 반에 대략 60명이었으니 넉넉잡고 과학 과목 한 시간 동안 약 8~10마리 정도의 개구리가 ‘희생’된 것이다. 일동, 개구리에 대한 묵념.

실제 개구리 해부를 하기 직전엔 테이블당 한 명씩 담당자(?)를 뽑았다. 그래서 메스니 가위니 손에 들고서 득의양양했던 그 담당자들은, 막상 손바닥만한 개구리가 마취로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곤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는 와중… 내가 앉았던 테이블의 담당자도 마침 그런 모습을 보여 내가 나섰다. “야, 메스 줘. 내가 할게.”

일단 교과서에 나온 대로, 축 늘어진 개구리의 사지를 넓은 판대기에 고정시키고 가위질의 순서를 지키면서(그렇다. 해부를 위한 가위질에도 순서가 있었다!) 개구리의 배를 서걱서걱 자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과학 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딱 껍데기만 잘라야 해. 너무 깊이 자르면 내장 다 상한다.”

뭐, 이러저러해서 실습은 끝났다. 웃기는 건, 바로 그 해 중간고사였는지 기말고사였는지 개구리 해부에 대한 문제가 출제가 되었는데 정작 직접 개구리를 해부한 나는 그 문제를 틀렸단 것. ㅠㅠ 말이 났으니 말인데, 당시 그렇게 개구리 해부를 하면서 난 그 어린 마음에도 ‘도대체 개구리 뱃속에 든 게 뭐 그리 중요하길래, 그걸 알아본답시고 애꿎은 생명을 해치나’하는 생각도 했다.

슬픈(?) 개구리에 대한 감상은 이게 끝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당시 한 반에 약 10마리 정도의 개구리가 희생되었는데, 한 학년이 10개 학급이었으니 한 번 실험에 대략 개구리 100마리 가량이 희생된 셈이고, 개구리 해부 실습이란 커리큘럼이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딱 그 해에만 있었던 것도 아닐 테니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간 한 해에 개구리 100마리가 희생되는, 개구리 입장에서 보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대량 학살극(!)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해부가 되어서,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해진 개구리 사체들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가 되었을까…? 양지바른 곳에 묻힐 팔자는 아니었으니 필경 매우 안타까운 최후였을 것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서늘한 초가을의 어느 날. 그 불쌍한 개구리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에는 부디 개구리 해부 실습 같은 커리큘럼 없는 세상에 태어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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