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을 자처하는 1인으로서, 새로 준비 중인 영화에 주연(혹은 조연)으로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물론 그 관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데, 최근 얼마간 전해진 신작 영화 몇 편의 캐스팅 소식은 일단 흥미롭게 느껴진다.


먼저 <레드 소냐> 이야기부터. 까마득한 옛날인 1985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얼굴을 알린 판타지 히로인, 레드 소냐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리부트 기획은 지금까지 수 차례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엎어지더니 이번엔 제대로 제작에 들어갈 모양이다. 아무튼 그 주연배우로는 <리벤지>란 영화에 출연했던 이탈리아의 배우이자 모델 마틸다 루츠가 캐스팅됐다. 강인한 여전사 역할엔 너무 착해 보이는(?) 마스크 아닌가 싶은데, 적당히 분장을 하면 또 괜찮아질지도.

다음으론 <바바렐라> 이야기. 이 작품 역시 리메이크작이다. 지난 1968년에 나온 제인 폰다 주연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데, 원작 자체가 ‘어떻게 하면 주인공(제인 폰다/바바렐라 역)을 그럴싸하게(?) 벗길 수 있을까’만이 관심인 사실상 포르노라고 봐도 무방한 작품이다. 원작에서 바바렐라는 외계의 수상한 생명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마다 옷이 찢어져서 노출도가 올라가는가 하면, 적과의 전투에선 공격을 받을 때마다 요상한(?) 표정에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 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페미니즘의 파워가 극에 달한 듯 보이는 2022년에, 도대체 어떤 용감한 제작자가 <바바렐라>를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지는 가운데, 미국의 차세대 글래머 스타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시드니 스위니가 바로 바바렐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다. 희한한 것은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총괄 제작자로서도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고 한다. 그 ‘용감한’ 제작자가 바로 배우 자신이었네.
앞서 이야기한 영화 두 편, <레드 소냐>와 <바바렐라> 모두 여성보다는 남성 관객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주인공 캐스팅 또한 바로 그런 (잠재적)코어 타깃의 선호도 또한 분명히 반영된 선택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미모가 무척이나 뛰어난 배우들로 ‘확실한’ 눈요기를 제공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렇지 않다!’면서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얼마 전 티저 예고편이 공개된 <인어공주> 실사 영화의 경우를 보자. 예고편에서 드디어(?) 베일을 벗은 주인공, 할리 베일리의 외모를 두고 일어난 갑론을박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모르긴 몰라도 내년에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도, 그리고 아마도 개봉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수억~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어느 쪽이 더 잘 어울리는지를, 여기에서 굳이 집어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ness)’을 부르짖는 이들에게서 못마땅함을 느끼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레드 소냐>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마틸다 루츠와 <바바렐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시드니 스위니에게 별다른 논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그녀들이 매우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들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해당 작품들의 주인공으로서 (비교적)잘 어울린다는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인어공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할리 베일리의 경우 논란이 ‘분명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 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가 <인어공주>의 주인공인 에리얼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녀가 (객관적으로?)그다지 예쁘지 않다거나, 심지어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논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강요된)획일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혹은 ‘원작처럼 빨강머리의 백인이 아니라고’ 할리 베일리가 별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 <인어공주>(그리고 그 동화를 원작으로 했던 디즈니의 동명 애니메이션 작품)를 보면서 깊이 갖고 있던 에리얼에 대한 인식과의 괴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영화는 제작될 것이다. 일부에선 ‘성(性)을 상품화한다’고 비난하는 한편 노골적인 섹슈얼리티(에 대한 판타지)를 마케팅 포인트로 하는 영화는 여전히 제작될 것이다. 일부에선 ‘짜증나는 PC주의자들끼리나 보고 잘났다면서’ 떠드는 한편 다분히 의도적으로 가치를 전복하는 영화는 여전히 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극장에서 개봉이 되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공개가 되어 어떻게든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바로 그 평가는, 관객 혹은 시청자인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