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지난 2019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 열린 ‘리치몬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발’ 중의 모습

윌리엄 셰익스피어 作 <햄릿>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덴마크 왕국의 왕자인 햄릿이 영국으로 가던 중 배가 해적의 습격을 받고 난파되는데, 햄릿은 그 난리통에 겨우겨우 살아남아 덴마크에 돌아온다. 그리고 햄릿은 사랑하던 여인 오필리어의 장례식에 참여하러 가는 도중, 공동묘지의 관리인이 무덤을 파다가 발견하고 던져버린 두개골이 자신의 어린 시절 궁정에서 만났던 광대 요릭의 것임을 알게 되고는 그 두개골을 들고서 독백을 한다.

아아, 불쌍한 요릭. 나는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끝없는 재담과 기막힌 상상력을 가진 친구였지. 천 번을 그의 등에 업혀 다녔지만 지금은 이렇게 되어 버렸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구역질이 날 것 같네. 여기에 달려있었을 입술에 나는 얼마나 입을 맞추었을지 모르네. 좌중들을 웃음바다로 만들던 그대의 익살, 광대 춤, 노래, 신명 나던 재담은 모두 어디로 가 버린 건가?

말하자면, 과거에 궁중에서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여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광대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인생사 덧없음을 설파한 것. 한편, 예전의 광대는 이른바 ‘왕실 지정 연예인’이었던 동시에 궁중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왕과 왕족, 그 주변에 기생하기 마련인 아첨꾼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풍자와 비꼬기의 형태로 정책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현재의 민심을 전하는 등 꽤 수준 높은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늘날 카드 게임에서 ‘조커’ 패가 대부분의 게임 룰을 파괴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조커는 종종 왕의 면전에서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했다는 건데, 절대왕정의 시대에도 ‘조커가 왕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식으로 갑자기 처형을 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절대권력에 대한 비판을 반어와 풍자의 형식으로 시전했던 조커가,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장안의 화제, ‘윤석열차’

한 고등학생이 그린 그림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지도는 최저치를 기록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그 어떤 분야에서도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현 정권을 폭주하는 기관차에 빗대어 풍자한 그림인데, 당연히 여당에서는 이에 대해 대놓고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즉 기관차 앞에 ‘누구나 알 수 있는 정치인’의 얼굴을 그려 넣고) 세태를 풍자한 한 영국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그런데 곧바로, 바로 그 일러스트레이터 본인이 직접 “(한국인 고교생의)그 작품은 내 작품의 표절이 아니며, 그 학생은 대단히 훌륭한 실력을 갖췄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무슨 코미디인가).

일련의 흐름을 짚어보면,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그저 별 일 아닌 것처럼,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면서 키우고, 또 키우면서 자중지란에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대통령도 인간인데, 카메라 앞이건 어디서건 상스런 말 좀 쓸 수도 있지. 날리면, 아니 바이든 대통령도 공식석상에서 ‘SoB’란 욕을 한 적이 있는데 사과하고 넘어간 적이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이고, 간단하게 사과를 하거나 유감을 표명하거나 하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변명을 하면서 사태를 키우는 것. 위에 소개한 그림을 그린 학생의 말을 빌리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유세를 다니다가 기차 안에서 앞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은 모습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전국 팔도 다니다 보면 발도 아프고 피곤하니 잠깐 의자에 발 올려놓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지. 근데 그게 굳이 아니라고, 악의적으로 편집됐다느니 뭐니 하면서 또 부인하고, 변명하면서 사태는 커지고.

이런 모습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 말이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른 지 이제 5개월인데, 시민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이 말이다.

답글 남기기